[로컬의 발견] 말은 제주로, 사람은 로컬로

국민일보

[로컬의 발견] 말은 제주로, 사람은 로컬로

고선영(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

입력 2023-09-23 04:02

제주 사계리에서 작은 콘텐츠 회사를 운영하는 나에게 로컬 기업의 운영에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가요, 하고 물으면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뭇거리게 된다. 사실 어려운 점을 대자면 한 삼십 가지 정도는 숨도 안 쉬고 읊을 순 있겠다.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고 싶지만 마음을 가다듬게 되는 건 그 질문자의 의도와 기대하는 바를 잘 알기 때문이다.

서귀포에서도 고작 인구 2200여명의 작은 어촌마을에 들어앉아 10년째 거르지 않고 각 계절의 문턱에서 꾸준히 종이잡지를 발행하는 우리에게 사람들은 참 궁금한 게 많다. 가장 궁금한 점은 어떻게 망하지 않았는가에 관한 것일 테다. 사실 창업 때부터 종이 매거진을, 게다가 지역 매거진의 지속가능성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봤던 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성공했는가보다는 어떻게 망하지 않았는지가 더 궁금하겠지. 작은 성공과 거의 성공에 가까운 실패를 번갈아가며 성실하게 도전하다 보니 우리는 차근차근 성장했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내게 지역에서의 창업을 묻는 사람들은 대부분 낯선 지역에서 새로운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거나 로컬 비즈니스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거나 투자사들이다. 그들에게 소소하고 구차한 어려움을 늘어놓기보다는 이러저러한 난관을 헤치고 우뚝 섰다고 하는 게 훨씬 서로 마음 뿌듯하다는 걸 알고 있다. 과장이나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다. 창업하고 성장하는 데 쉽기만 한 기업이 세상 어디 있겠는가. 돈 걱정, 사람 걱정 없이 성장하는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꾸준함의 힘으로 작은 성공이 쌓여 큰 성공을 만든다는 것을 말하고 싶고, 더불어 아직 로컬은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으로 가득하다는 사실도 많은 청년들에게 알리고 싶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로컬 창업이 붐을 이루고 다양한 행정 부처와 기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제주에서 비롯된 대중의 로컬에 대한 관심 역시 줄지 않는다. 그에 따라 의미 있는 성공과 결과를 보여주는 로컬 사례도 나오고 있다. 물론 로컬 기업의 성장에 따라 단계별 공통의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크게 돈과 사람의 문제가 크다. 특히 기술 기반의 기업들과 고도화된 인력이 필요한 성숙기의 기업들엔 더 그렇다.

지난봄 SNS에 회사의 채용 소식을 알리며 덧붙인 말이 생각난다. “회사에서 아름다운 사계해변까지 5분 거리이지만 매일 바다에 놀러 나갈 수 없음 주의!” 서울에서 빡세게 일만 하다 제주살이의 낭만과 로망을 좇아 손에 이력서 움켜 들고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전하는 농담 섞인 경고였다. 서핑 마니아라 파도 따라 서귀포에 정착한 J, 프리다이빙에 쏙 빠져 대기업 퇴사 후 제주로 내려온 K, 두 아이들에게 제주의 숲과 바다를 안기고 싶어 네 가족 이주를 결정한 B까지. 공고문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신나게 입사해 룰루랄라 출근하는 나의 새로운 동료들에게 일단 감사의 인사를. 열다섯 명,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복작복작 애쓰는 친애하는 동료들이 있어 이 섬이, 우리 로컬이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 그러고 보면 로컬에서도 역시 결론은 ‘사람’인가 보다.

고선영(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