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1급 대변인의 허상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1급 대변인의 허상

이성규 경제부장

입력 2023-09-21 04:08

1급은 공무원의 꽃으로 불린다. 100만명이 넘는 공무원 중 1급 고위직은 0.1%인 1000명 정도뿐이다. 장차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이라 ‘운칠기삼’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1급은 공무원이 스스로 노력해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어부지리로 1급으로 승진한 공무원들이 있다. 일부 부처의 대변인들이다. 정부는 지난 7월 대국민 정책 홍보를 강화하라는 대통령실 권고에 따라 정부 주요 7개 부처 대변인을 기존 국장급(2급)에서 실장급(1급)으로 높였다. 졸지에 1급으로 승진한 대변인들도, 고위직 한자리가 늘어난 해당 부처들도 모두 표정 관리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해당 부처를 출입하는 일선 기자들의 반응은 오히려 대변인과의 소통이 더 어려워졌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최근 한 사회 부처는 예정돼 있던 배경 브리핑을 30분 전에 취소한다고 출입기자단에 일방 통보했다. 이 브리핑을 듣기 위해 서울에서 세종청사로 내려온 기자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1급 대변인이 생기면 국·실 간 내부 조율이 더 잘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대변인실과 해당 국·실은 브리핑 취소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기에 바빴다. 이에 기자단은 대변인에게 강력 항의하고 대변인이 하는 정례 브리핑 거부를 선언하기까지 했다.

또 다른 부처 대변인은 1급으로 신분이 바뀌자 자신은 홍보 정책을 총괄해야 하니 일선 기자와의 연락은 홍보과장이 주로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장관을 따라다니는 게 주 업무가 돼 자신이 비서실장인지 대변인인지 스스로 헷갈리는 ‘무늬만’ 1급 대변인도 있다.

대변인을 1급으로 올리면 정책 홍보가 더 잘 될 것이라는 대통령실의 생각은 공직 사회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공무원은 위로 올라갈수록 아랫사람들과 소통이 강화되기보다는 단절이 되는 구조다. 여기에 ‘내가 명색이 1급 고위 공무원인데…’란 생각마저 박이면 기자들과 소통하기보다는 기자들 위에 군림할 가능성이 커진다. 공무원은 급이 올라갈수록 목은 뻣뻣해지기 마련이다. 모 부처는 1급이 되자마자 대변인 방 확장 공사를 했다. 멀쩡한 책상을 버리고 1급 격에 맞춘 큰 책상을 들이려니 방이 너무 작다는 이유였다. 일부 부처는 이 틈을 타 부대변인 자리 신설 등 조직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세종에서 10년간 파견 근무를 하면서 수백명의 대변인을 만났다. 이들 중에는 장관이 된 사람도 있고, 비리 혐의로 구속된 이도 있다. 그중 ‘명대변인’으로 꼽히는 이들은 공통으로 연차와 매체 영향력 등을 가리지 않고 기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와 마음을 내줬다. ‘세베리아(세종+시베리아)’로 불리던 세종시 초기 시절, 새벽녘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기자들에게 정책 배경을 친절히 설명했던 한 대변인은 집에 갈 시간이 아깝다며 청사 대변인 방으로 돌아가 야전침대에서 잠을 청하곤 했다. 모 청 소속 대변인은 한 신문사 편집국 구석에서 기사 한 글자만 고쳐 달라며 밤 12시까지 3~4시간을 눈칫밥 먹으며 서 있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회상한다. 이들은 과장과 국장급이었지만 여느 1급보다 자신이 속한 부처와 국가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높은 자리에 올라 내려다보면 더 잘 보일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헬기에서 내려다본 추석을 앞둔 시장 풍경은 활기차 보이기만 한다. 그러나 시장 한쪽에서는 1000원 한 장 깎으려는 손님과 상인의 힘겨루기가 있고, 치솟는 물가에 한우 팩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삼겹살을 집고 마는 애달픈 삶이 있다. 밑에서 함께 부대끼고, 소통해야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법이다. 1급 대변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이성규 경제부장 zhibago@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