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팔각모 사나이

국민일보

[창] 팔각모 사나이

조효석 영상센터 뉴미디어팀 기자

입력 2023-09-23 04:08

“먹고살기 힘들어서 갔지. 집에서 학교 갈 돈 주는 것도 아니고.” A씨는 해병대 병 326기다. 그는 채 열여덟이 되기도 전의 나이에 군에 들어가 경북 포항에서 자대 생활을 했다. 그 시절 많은 이들이 그랬듯, 딱히 거창한 포부가 있다기보단 가난에서 잠시 달아나기 위한 입대였다. 그의 사진첩에는 해병대의 빨간 계급장을 달고 팔각모를 쓴 모습이 빛바랜 사진으로 남아 있다. 군인이라기엔 앳된 얼굴이었다.

군에서 A씨는 닥치는 대로 온갖 훈련에 자원했다. 수송기에서 낙하산을 메고 한 번 뛰어내리면 생명수당으로 6000원을 벌었다. 그때 군인 월급은 1900원이었다. 일 년 만에 얻은 첫 휴가에선 신이 났는지 그렇게 고생해 모은 돈을 나오자마자 다 써버린 통에 이틀 동안 남의 차를 얻어타고 갈아타며 집에 갔다. 그때만 해도 해병대 군복 차림이면 사람들이 고생한다며 차에 흔쾌히 태워줬다고 했다.

수년 전부터 A씨는 해병대 동기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동기가 모인 단톡방에도 들어갔다. 군 시절 얘기는 잘 하지 않고 해병대 출신 티도 내지 않던, ‘포항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던 그를 기억하는 내겐 의아한 일이었다. “전에는 떠올리기도 싫었지, 너무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나이 먹으니까 같이 고생한 사람들 보고 싶고 그렇더라.” 전화기 너머에서 A씨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고(故) 채수근 상병은 해병대 병 1292기다. 열 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얻은 장손이자 귀한 늦둥이 외아들이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으던 성실한 청년이었다고 주변인들은 그를 기억했다. 막 스무 살이 되고서 입대한 그는 군대에서도 어머니 생신을 챙긴다며 소고기를 사서 보냈다. 사고 당시는 겨우 자대 배치 두 달째였다. 사진 속 그의 얼굴 역시 꽤나 앳돼 보였다.

40년도 넘게 까마득한 해병대 후배의 사고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A씨는 자연스레 당신의 군 시절을 떠올렸다고 했다. 해병대 중에서도 물에서 살아남도록 훈련받는 수색대가 들어갔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훈련과는 무관한 포병대원이 급류가 심한 현장에 투입된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군에서조차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벌어진 걸 보니 아무래도 윗사람이 상부에 잘 보이려고 무리하다 탈이 나지 않았겠냐는 짐작이었다.

사실 이번 일에 별문제가 없었을 거라 여기는 이를 주변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굳이 해병대 출신인지를 따질 것도 없다. 한국은 현역으로 입대하는 남성이 열 중 여덟아홉을 넘는 곳이다. 군 생활을 경험했다면 윗사람의 지시가 절차나 규정보다 먼저일 때가 부지기수인 이 조직에서 부조리가 어떤 식으로 벌어졌을지 생각해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적어도 이번 문제에서만큼은 진영이나 정파 논리조차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이유다.

군에서 의문투성이인 사건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전과 다른 게 있다면 사고 자체는 물론 조사 과정에서 더욱 이해 못할 일이 연달아, 그리고 큰 규모로 벌어진 점이다. 가장 폭발력이 큰 대통령실 외압 의혹을 차치해도 그렇다. 수사 결과를 결재해놓고 이튿날 돌연 경찰 이첩을 보류시킨 장관,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2시간 전 취소한 해병대, 관련 지시 여부를 두고도 말이 어긋나는 장관과 군 검찰에 이르기까지 최소한의 사실만 열거해도 숨이 차다.

고인이 목숨을 잃은 지 벌써 두 달이 더 지났다. 그사이 경찰이 사건을 재이첩받아 조사를 개시했다지만 외압 의혹이 여전한 와중에 여기에 기대하는 시선은 많지 않다. 국회에 야당이 발의해놓은 특검법도 여야 대치 탓에 통과가 난망하다. 남은 국회 임기상 여야 합의 없이는 패스트트랙을 거쳐도 무용지물이기에 법안이 방치되다 사라질 가능성도 높다. 정권 차원의 결단이 없다면 상황이 반전되긴 어렵다는 얘기다.

A씨와 해병대 동기들은 이번 일을 굳이 입에 자주 올리진 않고 있다. 속 시끄러울 일을 재차 떠올리고 싶지도 않고, 혹시나 어떤 경로로든 불이익이 있을까 조심스러운 것도 이유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는 다 통한다”고, “90%는 단결이 됐다”고 A씨는 말했다. 각자가 출신 지역도, 지지하는 진영도 다를지언정 고인을 애도하는 마음만큼은 다들 같다는 얘기였다. 그 마음이 울분으로 바뀌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진 않았다.


조효석 영상센터 뉴미디어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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