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당했다” 57% “갑질 해봤다” 20% [이슈&탐사]

국민일보

“갑질 당했다” 57% “갑질 해봤다” 20% [이슈&탐사]

본인 가해에 안일한 인식이 문제
갑질 책임, 관리자·소비자 비슷

입력 2023-09-26 04:08

직역을 가리지 않고 터져 나오는 갑질에 대한 아우성은 사회 구성원의 상식 부족 때문인 것이 아니다. 감정노동자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든지, 대가를 지불하고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해도 기본적으로 평등한 관계라든지 하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갑질이 근절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나는 아니다”며 남 일로 치부하는 안일한 인식에 있다.

국민일보는 엘림넷 나우앤서베이에 의뢰해 20~60대 이상 성인 537명을 상대로 갑질과 감정노동 경험을 조사했다. 25일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사회는 ‘갑질을 당했다는 이는 많은데, 정작 갑질을 했다는 이는 없는’ 상태다. ‘일할 때 갑질을 당하고 감정을 숨긴 경험’을 묻자 57.0%가 있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반대로 ‘감정노동자에게 갑질을 해본 경험’을 물었을 때는 20.7%만 그런 경험이 있다고 했다.

“갑질을 했다”는 사람이 “갑질을 당했다”는 사람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에는 갑질과 감정노동이 지속하는 원인이 숨어 있다. 각자가 타인에게는 가혹하지만 스스로의 행위에는 관대하다는 점이다. 특정 소수가 다수를 상대로 무분별한 갑질을 거듭한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지만, 이러한 해석은 감정노동자들이 말하는 실태와 맞지 않는다. 국민일보의 ‘갑질-감정노동 실태조사’에 응한 감정노동자들은 직역을 불문하고 “과거보다 개인주의가 커졌다”는 명제에 크게 동의했었다.

한국사회 구성원은 소비자와 노동자의 관계가 평등하다는 점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고객과 감정노동자의 관계는 어때야 옳은가’를 물었을 때 “평등해야 한다”는 응답은 89.6%였다. “(돈을 지불한) 고객이 노동자의 우위에 있어야 옳다”는 응답은 5.6%에 불과했다. 이러한 이론적 인식은 감정노동자들의 실증적 경험과 배치된다.

갑질을 안하면 손해라는 비뚤어진 인식을 형성한 또 다른 축은 사업장 관리자다. ‘갑질과 감정노동의 문제에서 책임이 가장 큰 주체’를 물었을 때 ‘관리자’라는 응답 비중이 43.3%로 ‘소비자’(43.6%)와 거의 동일했다. 이정훈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 소장은 “지식과 행위가 이율배반적인 경우가 많다”며 “사람에 대한 자세, 노동에 대한 관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이택현 정진영 김지훈 이경원 기자 alley@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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