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아버지와 나의 구름동화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아버지와 나의 구름동화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입력 2023-09-27 04:02

새파란 하늘에 몽실몽실 떠 있는 뭉게구름을 보면 유년의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 짓는다. 기억의 편린들을 조합해보자면 내가 여덟 살 남짓 됐을까. 아버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딸! 저기 구름 보이지? 구름 위에 공주가 사는 성이 있어. 공주는 왕과 왕비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는데 공주가 행복한 날에는 해가 뜨고 슬픈 날에는 비가 온단다.’ 나는 신이 나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구름 위에 있는 성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골몰했다. 고깔 모양 지붕이 세 개 있는 성을 만족스럽게 완성한 꼬마 건축가는 재빠르게 옷가게에 들어갔다. 마음에 드는 드레스는 많은데 꼭 한 벌만 골라야 해서 신중하게 머리를 굴렸다.

어린 내가 미래로 내달려 어른이 되는 사이에 과거로 밀려나간 구름 위의 성은 소리도 없이 허물어졌다. 불현듯 기억 일부가 떠올랐을 때 과연 그날의 일화가 실제인지 환영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의심을 거두라는 듯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콩닥거렸던 가슴과 귀가 쫑긋 서던 감각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망각의 바다에서 길어 올린 유년의 기억과 조우하자 흐른 세월이 아득하고 마음이 아련해 한참을 구름만 바라봤다.

사람은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기억과 망각을 반복한다. 어떤 것은 잠시 스쳐 사라지고, 어떤 것은 오랜 세월 함께한다. 일상다반사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망각은 자연스럽고도 필요한 일이지만 간직하고픈 순간을 글이나 사진 같은 매체에 보관함으로써 망각을 저지한다. 기록은 ‘그랬다’는 사실만 덩그러니 남기기도 하고 그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불러일으켜 재현하기도 한다. 뭉게구름은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와 내 어린 날의 순수를 담고 있는 단 하나의 기억 저장고다. 언제 어디서든 고개 들어 바라보면 소환할 수 있는 아버지와 나의 구름동화. 그렇게 쭉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며 숨이 다할 때까지 나와 함께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