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젊은이의 양지

국민일보

[청사초롱] 젊은이의 양지

김시래 성균관대 겸임교수·미디어문화융합대학원

입력 2023-09-27 04:06 수정 2023-09-27 04:06

베드 로팅(bed rotting)은 침대에 누워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트렌드다. 지금 틱톡의 베드 로팅 해시태그(#bedrotting)는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사진 속 젊은이들은 넷플릭스를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엎드려 라면을 먹기도 한다. 이 시간이 잠깐의 휴식이거나 재미 때문이라면 할 말이 없다. 주변과 연결을 끊고 잡념 없이 보내고픈 마음이야 누구나 굴뚝같을 것이다. 홀로 있음, 그러니까 고독과 같은 감정은 성숙한 인간이 자발적으로 마련하는 자기 성찰과 자기 확장의 시간이다. 명상이나 요가처럼 치유와 성장의 마중물이 된다. 그러나 베드 로팅은 걱정스럽다. 잠자리에서조차 디지털의 액정 속에 갇혀 있어서다. 코로나 시절의 아침을 기억해 보라. 침대에서 빈둥대는 습관은 고립을 자초하고 무기력으로 이어져 활동성을 퇴행시킨다.

이불 위에 뒹구는 젊은 군상을 들여다보다 얼마 전 속초 조양동에서 만난 홍명진씨가 떠올랐다. 그는 돼지구이 신흥강자 ‘달빛돈가’의 주인이다. 대기표를 건네고 들어선 달빛돈가엔 손님으로 가득했다. 검정 유니폼의 종업원들이 30여개 테이블 사이를 돌며 물고기 유영하듯 서빙했는데 움직임과 동선에 어떤 규칙 같은 것이 있는 듯 보였다. 마침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을 지닌 젊은 주인이 우리 자리에 배치됐다. 그는 능숙하고 빈틈없는 동작으로 자리를 세팅하고 고기를 구워냈다. 물어보니 사개월 전에 오픈했는데 단 이개월 만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고깃집 인연은 서울 마장동에서 삼촌에게 배운 ‘발골기술’ 때부터라고 했다. 그제서야 그가 고기를 자르고 구워 낼 때 손과 칼과 집게의 날렵한 일체감을 알 만했다. 몸으로 체득한 공부법이 음식의 재료와 조리의 도구와 화력의 관계를 통달시킨 것이다.

문득 장자(莊子)의 양생주편(養生主篇)에 나오는 포정의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백정이던 포정이 늘 깨끗하게 고기를 발라낸 비결은 어떤 이론의 체계가 아니라 19년간 소의 근육과 뼈 사이로 칼을 넣어 살을 다치지 않고 발라낸 반복된 훈련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단단한 목소리와 기민한 몸놀림의 젊은 주인장도 훈련이 실전이 되는 ‘몸의 공부법’을 알고 있었다. 이야기 말미에 양주 한잔을 권했는데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일하는 친구들이 따라할 듯하니 마음만 받겠다고 했다. 그는 손님이 늘어나도 프랜차이즈는 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관리하고 운영하는 직영점만 열겠다고 했다.

채용 절벽의 시대, 물가는 오르고 취업시장은 얼어붙었다. 최근 보도를 보면 대기업의 64%가 신입사원 모집 계획이 없거나 아직 미정이라고 한다. 수익성 악화에 시달려 기업이 긴축 경영에 돌입한 탓이다. 그들에게 전한다.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라. 공부의 무대를 이론에서 현장으로 옮겨라. 변화무쌍한 가속도의 시대, 고정된 진리는 없다. 태도가 아니라 행동이 경쟁력이다. 시행착오가 진짜 스승이다. 배드민턴의 안세영이든 탁구의 신유빈이든 칠판이 아니라 경기를 통해 조련됐다.

하나 더 보태자면 일의 근원, 욕망에 관한 것이다. 모든 것은 욕망의 대상이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것에 빠져들어 집착하고 몰입할 때 구속이 되고 사슬이 된다. 신발장을 열고 신발 개수를 세어보라. 명품에 시선을 빼앗겼던 스스로를 돌아보라. 사실 손목시계는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일 뿐이다. 불필요한 소비나 천박한 과시욕은 도덕성의 상실이고 환경오염의 종범이다. 욕망의 크기만 조절해도 행복의 영속성이 찾아든다. 미국에서 정착되고 있는 ‘100가지 물건으로 살아가기 운동’이나 알라딘과 당근마켓의 성장도 거품 소비의 참신한 대안이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배우자. 그리고 가볍게 살아가자.

김시래 성균관대 겸임교수·미디어문화융합대학원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