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수사로 망치기는 쉽지만…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수사로 망치기는 쉽지만…

강주화 산업2부장

입력 2023-09-27 04:02

현 정부의 여러 수사 기사를 보다 한 고위 검사가 사석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수사로 누군가가 당선되게 만들 순 없지만 상대편 후보가 (당선) 안 되게 만들 순 있다.” 후보의 비리를 캐 수사를 하면 그의 지지세를 꺾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수사의 본질은 범죄 혐의를 밝히는 것이지만 기소 여부와 상관없이 수사 대상과 그 주변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수사는 그렇게 무언가를 망가뜨린다.

이런 의미에서 감사원의 잇따른 공무원 수사 의뢰는 우려스러운 면이 있다. 감사원이 공무원 비위를 적발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감사와 그 연장선상의 수사가 해당 부처나 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직무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불러일으키고 무력감을 준다면 그건 감사 범위가 지나치게 넓거나 출발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 감사가 한 예다. 이 사업은 지난 정부의 핵심 사업이었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감사를 진행했다. 지난 6월까지 2차례에 걸쳐 38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전·현직 공무원 13명이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산업부는 내내 뒤숭숭했다고 한다. 그 여파는 이탈로 나타났다.

공직자윤리위원회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자료를 보면 2020~2022년 퇴직심사 건수는 매년 800건 안팎이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482건이 접수됐다. 산업부 고위 공무원만 23명이 기업 등으로 이직하기 위해 절차를 밟았다. 산업부는 차관에 이어 장관까지 바뀌었다. 올 상반기 공무원 퇴직이 유난히 많은 데에는 정권 교체로 핵심 정책이 바뀌면서 좌절감이 컸다는 말이 나온다. 현 정부는 지난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제동을 걸고, 탈원전 정책을 폐기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이전 정부의 비리를 감사했고 수사를 의뢰했다.

이런 급격한 정책 선회는 관련 산업 생태계를 파괴한다. 지난 정부에서 태양광 산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했던 한 건설사 임원은 이렇게 토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 용지를 마련하고 해외 투자를 받기로 했는데 이게 가능할지, 언제 할 수 있을지 이젠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2.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가장 낮은데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사업 비리를 감사하는 사이 국내 산업 규모도 위축됐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지난 7월 발표한 ‘2023년 재생에너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태양광 설비 용량은 2.1GW로 전년 대비 두 계단 하락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글로벌 기준에 따라 줄줄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달성을 선언하고 있지만, 선제 조건인 국내 재생에너지 전환은 오히려 뒷걸음질하고 있다.

에너지 정책만이 아니다. 현 정부는 수사를 주요 축으로 정책을 진행하는 듯하다. 교육 정책을 위해 학원가 ‘일타’ 강사를 수사하고, 노동 정책을 위해 노동조합 비리를 수사하고, 부동산 정책을 위해 건설 현장을 수사한다. 과학자들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항의하자 여당 일각에서 R&D 카르텔이 있다며 비리를 지목했다. 일단 문제를 비리에서 찾고, 수사로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수사는 네거티브 전략이다. 수사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려주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진 않는다. 좋은 정책은 포지티브 전략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준다. 정책은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선거가 아니다. 가장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국정 방향을 제시하는 실질적인 내용이다. 윤석열정부가 국정 운영을 이전 정부를 이기기 위한 선거 과정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강주화 산업2부장 rula@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