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중동 전쟁과 미국 대선

국민일보

[전석운 칼럼] 중동 전쟁과 미국 대선

입력 2023-10-11 04:20

우크라 전쟁에 중동 전쟁까지 바이든 백악관 수성에 먹구름
트럼프 귀환 가능성 높일 수도

트럼프, 두 차례 회담 성과 없어도 김정은에 여전한 호감
두 사람의 브로맨스와 담판은 한국 안보의 리스크 우려

김정은 만나러 가기 직전에도 한국에 방위비 증액 요구한
트럼프의 거래 기술 경계하고 독자핵무장 검토해야 할지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이 안식일에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아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자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사전 경고했던 바이든 대통령이 하마스의 공격은 낌새조차 채지 못했다. 인질 석방 대가로 동결이 해제된 이란의 석유 판매 대금 60억 달러가 하마스에 흘러든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었다. 백악관은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글로벌 리더십은 안팎으로 도전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악재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는 반사이익이다. 내년 11월 대선에 출마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백악관을 지켰다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일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일도 절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지난 대선에서는 패배했지만 최근 바이든과 호각지세를 보이거나 오차 범위를 훌쩍 넘는 지지율 차이를 보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지난달 24일 공동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51%의 지지율로 바이든(42%)을 9% 포인트 앞섰다. 트럼프는 퇴임 이후 4건의 형사재판과 1건의 민사재판에 회부됐지만 이런 사법 리스크도 그의 높은 인기를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만일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귀환한다면 한국의 안보와 경제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선언에서 합의한 한·미 핵협의그룹을 트럼프가 승계할지부터 미지수다. 더 큰 관심은 트럼프가 김정은을 다시 만날 것인지 여부다. 트럼프는 퇴임 후에도 김정은과 연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여전한 호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지난달 8일 사우스다코타주 래피드시티에서 열린 공화당 모금행사에서 자신이 재선에 성공했다면 북·미 간 합의를 타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북·미정상회담이 재개될 수는 있다. 그러나 과거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몇 가지 문제가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모든 걸 결정하는 톱다운 회담은 파격의 연속이었고 예측불허였다. 싱가포르 회담은 시간 장소까지 발표됐다가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고, 합의문 작성은 회담 당일 아침까지도 진통을 겪다가 원론적 선언에 그쳤다. 하노이 회담은 실무 협상에서 아무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두 정상이 만나는 바람에 처음부터 결렬이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배제였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를 통해 북·미정상회담을 주선한 문재인 대통령의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하다’고 불평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주장한 3자 회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대화에 자신감이 붙은 탓인지 나중에는 문 대통령의 조언도 무시했다는 게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의 증언이다.

볼턴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만나러 판문점으로 가기 직전 청와대에서 만난 문 대통령에게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위한 협상 창구 지정을 요구했다. 트럼프는 방위비 분담금을 10억 달러에서 50억 달러 이상으로 늘리라고 압박했다. 볼턴이 보기에 트럼프의 속내는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충분히 인상하지 않으면 주한미군 철수도 불사하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했지만 트럼프는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만 쏘지 않아도 제재를 일부 풀어주는 이른바 스몰딜을 김정은에게 제시했었다. 이런 식이면 두 사람이 즉흥적으로 상호불가침조약과 주한미군 철수를 합의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북·미 대화는 한·미 간 조율속에 이뤄져야 한다.

트럼프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같은 미국 대통령이 또 나올 가능성은 있다. 한국은 그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하마스의 공격에서 보듯이 미국도 동맹국의 안보를 완벽하게 보장하지 못한다. 하물며 북한과의 거래를 통해 한국을 안보 공백으로 빠뜨릴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이 등장한다면 한국도 독자 핵무장을 비롯해 안보 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할지 모른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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