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두 개의 전쟁, 허약한 한국 경제

국민일보

[여의춘추] 두 개의 전쟁, 허약한 한국 경제

고세욱 논설위원

입력 2023-10-13 04:07

우크라이나에 이은 중동 전쟁
우리 경제에 설상가상 악재

'괜찮다'식 불안 무마 말고
길고 어려운 숙제 대비하라

빚 줄이고 생산성 향상 힘써
위기가 현실 안되도록 해야

“영향은 제한적이다.” 대외 악재가 발생할 때 정책 당국이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직후인 지난 10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과도한 불안에 사로잡힐 필요 없다. 분쟁이 장기화되지 않는 경우 유가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대러시아·우크라이나 교역 규모, 원자재·곡물의 비축·계약 물량 등을 고려할 때 단기적·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국민 불안 심리를 달래주는 건 좋은데 지나치게 기계적이라고 할까. 우크라이나 전쟁 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파도라는 ‘직접적 영향’을 경험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경제 펀더멘틀(기초 체력)은 괜찮다”며 외환위기를 눈감았던 정부 발표와 기시감이 든다는 이들도 있다.

정부는 ‘국지적으로 끝난 경우가 많았다’며 중동 사태에 낙관하는 듯하다. 금융시장도 아직은 차분한 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민간인 사망자수는 1000명이 넘어 건국 이후 75년 만에 최대 규모다. 기존의 4차례 중동전, 국지전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말처럼 ‘길고도 어려운 전쟁’이 불가피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에도 단기전 기대에 잠시 글로벌 금융시장은 조용했지만 오래 못 갔다. 알고보니 태풍 전야였다. 중동 사태에서도 ‘길고도 어려운’ 숙제를 각오해야 한다.

더구나 ‘제한된 영향력’ 운운하며 대외 여건에 초연할 처지가 아니다. 기존 패러다임이 바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은 몇몇 문제점을 마주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은 부동산 부채, 독일은 제조업과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나홀로 잘 나가 보이지만 급증하는 재정 적자가 골치다.

이들 국가의 약점이 응축된 곳이 한국이다. 가계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약 75%로 중국(70%)을 웃돈다.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잔액은 지난 6월 말 133조1000억원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다. 부동산 부실로는 한·중은 도긴개긴이다. 미국의 국가채무(4경원)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13%다. 한국은 GDP의 50% 수준이어서 양호해 보이나 속도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1~2026년 한국의 GDP 대비 정부채무 비율 상승폭이 15.4% 포인트로 선진 35개국 중 가장 클 것이라 전망했다. 여기에 미·중이 우리에게 명함도 못 내밀 분야가 가계부채다. 지난해 중국 가계부채는 GDP의 63.5%, 미국은 74.4%인데 반해 우리는 108.1%(IMF 기준)다. 글로벌 부채 대국이다.

독일과는 경제구조가 유사하다. 제조업 중심 경제는 고금리와 긴축에 따른 구매 감소와 원자재 비용 부담에 노출됐다. 중국 경기 둔화가 자국 경제 타격으로 이어진다. 수치로 보면 총부가가치 중 제조업 비중(독일 20.8%, 한국 27.9%), 수출액 중 중국 비중(독일 6.7%, 한국 22.8%)은 우리가 더 높다. 독일이 지금 ‘유럽의 병자’로 불리는데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다음 병자는 우리다.

답은 뻔하다. 빚을 줄여 위험 노출을 최소화하고 생산성을 높여 불투명한 환경에 대처하는 것이다. 답을 두고도 실천이 어렵다.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다. 예산은 긴축을 지향하는데 기업, 가계 대출은 푼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릴 때 특례보금자리론 등 대출 완화를 꺼내 엇박자를 내는 식이다. 결과는 ‘고금리 속 대출 급증’이라는 한국만의 풍경이다. 생산성은 노동 개혁, 저출산·고령화 대책, 연구개발(R&D) 진흥이 맞물려야 제고된다. 노동 개혁은 주 69시간 논란으로 시동도 걸어보지 못했고 밋밋한 저출산 대책은 최저 출산율 경신에 속수무책이다. 샌님 유형의 과학기술자들을 ‘카르텔 집단’으로 몰면서 17% 가까이 R&D 예산을 난도질한 것은 할 말을 잊게 한다.

우크라이나에 이은 중동 전쟁은 우리 허약한 경제에 설상가상이고 그 영향은 제한적인 게 아니라 너무 크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는 집권층이 귀를 열고 민생에 신경쓰라는 유권자의 경고다. 제시된 경제 해법을 충실히 이행하고 딴짓(이념 논쟁)은 삼가라는 당부이기도 하다. 정부가 안팎의 적신호가 주는 의미를 모르면 정말 위기가 올 수 있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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