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주말골퍼도 최경주처럼

국민일보

[신종수 칼럼] 주말골퍼도 최경주처럼

입력 2023-11-14 04:20

한국에서 골프 칠 정도면
모든 것을 갖춘 행복한 사람

이들이 기부하지 않으면
누가 기부하겠는가

PGA투어 뛰면서도 이웃
돌보는 최경주 자랑스러워

한국에서 골프를 즐길 정도면 최소한 다섯 가지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경제력과 건강은 기본이다. 이 둘을 못 갖춰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시간 여유도 있어야 한다. 맨날 일에 허덕이는 사람은 어쩌다 골프장에 가 있어도 계속 전화가 오고 마음이 편치 않다. 라운딩을 같이 할 친구나 동반자도 있어야 한다. 매너가 좋지 않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면 동반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골프비를 다 대준다고 하면 모를까, 결국 골프 사이트를 뒤져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치는 수밖에 없다. 집에 우환도 없어야 한다. 집에 무슨 큰일이 생겼는데 골프 치러 가는 사람 못 봤다. 지금은 골프장이 많아졌지만 과거 골프장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인 시절에는 권력까지 있어야 했다.

한국에서 골프 치는 사람은 한마디로 특권층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무조건 감사할 수밖에 없다. 공이 좀 안 맞는다고 짜증을 낸다면 회개할 일이다. 특히, 골프를 즐기며 혼자 행복한 것에 그치지 말고 주위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주위를 돌아보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기부다.

각국의 기부 문화를 보여주는 세계기부지수 순위라는 것이 있다. 영국 자선지원재단이 해마다 세계 200만명을 설문조사해 매기는 순위다. 우리나라는 하위권이다. 지난해 조사 대상 119개국 중 88위에 그쳤다. 2011년 57위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계속 떨어졌다. 한국 골프 대표팀이 올림픽에 나가 88등을 했다면 난리가 났을 텐데, 기부 순위가 하위권인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기부에 관한한 후진국인 셈이다. 서구 선진국 가운데 기부지수 순위가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이다.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각하다는 미국 사회에서 기부 문화가 공동체를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17년 세계 꼴찌에 가까웠던 중국의 기부지수가 지난해 49위로 급상승한 것도 공동부유(共同富裕) 정책에 따라 기부 문화가 활성화된 결과다.

최근 아마추어 주말골퍼들이 골프를 즐기면서 형편이 어려운 골프 꿈나무들을 후원하는 행사가 열렸다. 태국 카빈부리CC에서 열린 국민일보-지티엑스글로벌 자선골프대회에 120여명이 참여했다. 한 참석자는 “태국 골프관광 간다고 하면 집사람이 말도 못 꺼내게 했을 텐데, 골프 꿈나무 돕기 자선골프대회라고 하니까 뭐라고 안 하더라“고 말했다. 이 행사를 통해 마련된 2000만원은 최경주재단에 기부될 예정이다.

최경주재단의 핵심사업은 청소년 육성과 어려운 이웃에 대한 도움이다.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최경주 프로는 재단 활동에 대해 “어려운 환경 속의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우리가 사는 사회에 나눔의 손길이 이어지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설립됐다”며 “그 마음을 한결같이 유지하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골프 불모지 완도에서 태어나 17세 때 우연히 골프채를 잡은 그는 대한민국 최초로 미국 PGA투어에 진출해 아시아인으로는 드물게 8회 우승을 일궈 내고, 50세 이상 시니어투어에서도 한국인 최초로 우승컵을 안았다. 공만 잘 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고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후원사와 팬, 동료, 캐디 등을 배려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금융위기 당시 국내 대회가 취소될 상황에서 후배 선수들에게 대회 참가 기회를 주기 위해 자신의 초청비를 받지 않고 대회가 열리도록 하고, 캐디가 골프백을 멜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들 때까지 함께한 일화는 유명하다. 대한민국 골프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골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PGA투어를 뛰는 와중에도 이웃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내밀고 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가 꿈나무들을 육성하면서 골프 실력 못지않게 강조하는 것은 인성이다. 기량만 쌓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회복력도 길러서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하고, 그 기운을 주변에 나눌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는 것이다. 골프뿐이겠는가. 공부나 일, 사업,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만을 위하는 수준을 넘어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손을 내밀 때 우리 사회는 더 따뜻해질 것이다. 마침 최 프로가 시니어 PGA투어 올해 마지막 대회인 찰스 슈와브컵 챔피언십에서 공동 8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린다. 골프와 이웃 사랑을 병행하는 그가 자랑스럽다.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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