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의 고백록] ‘메멘토 모리’ 커피 한 잔 어떨까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송길원 목사의 고백록] ‘메멘토 모리’ 커피 한 잔 어떨까

입력 2023-11-18 03:08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남아공 출신 비비안 반 블러크의 세라믹 해골작품을 흑장미와 붉은 장미, 일곱 등잔과 함께 배치해 메멘토 모리를 강조했다. 송길원 목사 제공

산사(山寺)의 푸른 자연과 고풍스러움은 불교의 매력이다. 거기다 풍경과 종소리는 어떤가. 산사에서 듣는 바람 소리는 구도자의 마음을 가라앉힌다. 오죽하면 ‘소리 공양(供養)’이란 말이 다 있을까. 거기다 풀향과 차향(茶香)이 코를 자극한다. 시멘트가 아닌 흙 마당을 거닐 때 발끝에 느껴지는 감각은 형용키 어렵다. 시각-청각-후각-촉각을 넘어 미각까지 자극한다. 바가지로 퍼마시는 생수 맛은 등골까지 시원하게 한다. 웬만한 중산층 밥상에는 끼니마다 사찰 반찬이 한두 가지는 오른다.

이처럼 불교는 정확하게 인간의 오감(五感)을 파고든다. 거기다 산사 체험의 ‘템플스테이’도 있다. 템플스테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의 전통문화 체험 및 숙박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불교조계종이 손잡고 시작한 국고 지원사업이었다. 해외 관광객은 물론 내국인도 스스럼없이 절을 찾아 나선다. 템플스테이는 국민정신 건강까지 파고든다.

가톨릭도 오감 만족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시각을 사로잡고 그레고리언 찬트가 청각을 흔든다. 성체성사와 축성수, 분향단(焚香壇)의 향 뿌리기가 그렇다. 산사의 차(茶)가 있다면 가톨릭에는 카푸치노 커피가 있다. 카푸친이라는 수도회에서 시작된 죽음을 묵상하는 커피다.

가끔 나는 하나님이 주신 오감을 느끼지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는 개신교인들은 목각(木角) 인생이 아닌가 여길 때가 있다. 설교의 대가 스펄전 목사도 말했다. 우리의 설교가 오감을 자극해야 한다고. 어디 설교뿐일까. 교회를 찾고픈 마음을 먹게 할 수는 없을까. 나에게는 영원한 숙제였다.

그러다가 문득 커피를 떠올렸다.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이 된 지 오래다. 2020년 기준 커피 수입량은 16만6000t이다. 잔으로 환산하면 한 사람당 353잔 정도다. 세계 평균이 132잔이니 다른 나라 사람들의 세 배나 많은 커피를 마시고 사는 셈이다. 시장 규모는 연간 6조원 정도다. 그중 스페셜티 커피의 규모도 1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카페만 전국에 10만개가 넘는다. 거기다 교회 카페와 홈 카페까지 합치면 대체 얼마나 될까.

카푸치노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 카페모카 카페라테에 이어 ‘메멘토 모리’ 커피를 출시해 볼 마음을 먹었다. ‘메멘토 모리 기독시민연대’ 운동을 펼칠 때다. 장례식장에 등장하는 영원한 국민 메뉴 ‘육개장’ ‘오징어’ ‘땅콩’ 거기다 그놈의 ‘사이다’ ‘콜라’의 틀을 깨보고 싶어서였다.

빈센트 반 고흐가 오늘날 차상위계층인 광부, 천민, 가난한 이들에게 커피 성찬식을 베풀었던 것처럼 나는 ‘메멘토 모리’ 커피로 죽음을 묵상하기를 희망했다. 커피의 본질은 열매가 아닌 뿌리, 더 나아가 토양에 있다. 토양이 오염돼 있다면 오염된 맛이 나올 것이다. 토양이 기름지고 건강하면 건강한 그대로의 맛이 난다. 결국 흙의 맛이다. 흙이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창 2:7)

커피는 오미(五味)의 향취가 아닌 기억 속의 맛이 따로 있다. 커피 너머의 흙 맛을 맛볼 수 있는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언젠가 우리 모두 나그네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커피의 의미를 이렇게 새겼다. “Christ offers forgiveness for everyone everywhere.”(그리스도께서는 어느 곳의 누구라도 용서하십니다.) 나는 이제야 오감(五感) 인생은커녕 커피가 뭔지도 모른 채 커피를 홀짝홀짝 들이켰던 나를 돌이킨다. 왜 나는 이처럼 늦게 철드는 사람으로 사는 걸까. 커피가 당기는 12월이 눈앞에 와 있다. ‘메멘토 모리’ 커피 한 잔 어떨까.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동서대 석좌교수

갓플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