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응급실 뺑뺑이’ 대폭 줄인 대구의 실험

[사설] ‘응급실 뺑뺑이’ 대폭 줄인 대구의 실험

입력 2023-11-16 04:04

지난 3월 대구에서 10대 여학생이 응급실 네 곳을 전전하다 목숨을 잃었다. 건물에서 추락한 중증환자였는데, 구급차로 2시간을 헤맸지만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끝내 치료받지 못했다. 이 비극적인 ‘응급실 뺑뺑이’ 사건은 대구의 응급의료체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대구시 보건당국과 소방안전본부, 6개 종합병원 책임자들이 모여 마련한 개선책의 핵심은 병원이 권한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환자 못 받는다”는 병원의 말이 먹히던 시스템을 확 바꿔서 “이 환자는 당신 병원서 받으라”는 구급대의 말이 통하게 했다.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 설치한 컨트롤타워가 각 응급실 현황을 실시간 파악하면서 환자 상태, 이송 거리, 병상 상황 등에 따라 수용할 병원을 지정케 한 것이다. 요즘 대구에선 구급대원이 병원마다 전화해 묻지 않는다. 센터에서 지정한 응급실로 달려가기만 하면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

공급자(병원) 중심이던 응급의료체계를 이렇게 수요자(환자) 중심으로 전환해 몇 달간 시범 운영한 결과 ‘뺑뺑이’ 상황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응급환자 이송에 10분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이전보다 26%나 감소했다. 병원을 새로 짓거나 병상을 늘리는 물리적 조치 없이 이런 효과를 얻었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다. 대구의 실험은 발상의 전환과 시스템 효율화로 필수의료의 허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선례를 제시했다.

정부가 지난 5월부터 추진 중인 응급의료 대책도 지역사회 의료 네트워크의 효율화에 성패가 달려 있다. 부족한 의사와 병상을 늘리고, 필수의료진의 공백을 메우는 인프라 확충이 더 근원적 처방이겠지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며 그러는 중에도 응급환자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17개 광역 시·도마다 구성이 완료된 지역응급의료협의체에서 대구의 사례를 면밀히 연구해 각 지역 사정에 맞는, 가장 효율적인 응급의료 운용체계를 만들어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