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제3세력 찾게 하는 여야의 ‘혁신 시늉’

국민일보

[여의춘추] 제3세력 찾게 하는 여야의 ‘혁신 시늉’

손병호 논설위원

입력 2023-11-17 04:08

여당 인적 쇄신 국민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데 대상자들은
벌써부터 혁신안에 강한 반발

민주당은 ‘시스템 공천’ 내세워
인적 쇄신에 소극적…기존에
만든 혁신안 적용도 미적거려

총선 얼마 안 남았는데 이 정도
혁신으론 유권자 마음 못 얻어
쾌도난마로 화끈히 쇄신하길

여야가 혁신위원회와 총선기획단 등을 꾸려 혁신이니 쇄신이니 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런데도 아주 눈곱만한 혁신안을 놓고 벌써부터 죽이네 마네 하며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으니 엄살도 여간한 엄살이 아니다. 국민들한테는 별것 아닌 쇄신을 마치 어마어마한 쇄신인 것처럼 꾸미려고 일부러 이런 소동을 벌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런다고 국민들이 넘어가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국민의힘 혁신위가 내놓은 ‘험지 출마’부터 뭐 그리 대단한 혁신이라고 벌써부터 지도부와 영남 중진 의원들이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지도부와 영남 중진, 친윤석열계 인사한테 요구한 험지 출마는 서울이나 경기·인천에 나가라는 것이지 호남 어디쯤 나가라는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험지는커녕 되레 혁신위를 무너뜨릴 기세로 덤비고 있다.

중진들은 험지 출마도 못하겠다지만 기실 수도권 출마를 준비하는 신진 정치인은 ‘험지 출마=중진의 또 다른 생존법’으로 받아들인다. 엄청난 불이익인 것처럼 험지 딱지를 붙였지만 동전을 뒤집어 보면 ‘수도권 중진 낙하산’일 수도 있다. 진짜 쇄신한다면 보궐선거 참패와 창피한 수준의 국정지지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용퇴하거나 적어도 이번 선거는 건너뛰고 다음을 도모해야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수도권에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건 나름 대접받는 일이다. 터를 닦지 않은 새 지역구에서 선거 치르기가 쉽진 않겠으나 그래도 수도권은 진영 대 진영 싸움의 성격이 강해 여당에서 힘 센 중진이 공천되면 해볼 만한 선거가 제법 된다. 이 때문에 지금 험지 출마에 반발하는 중진들이 나중에 ‘희생양’ 모드로 수도권 공천을 받거나 입각 등의 반대급부를 챙기려고 더 투덜거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없지 않다.

험지 출마에서부터 막히니 당초 혁신위가 요구한 지도부·영남·친윤 인사에 대한 ‘불출마’ 요구는 쏙 들어간 형국이다. 혁신위가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연임 금지’도 추진하려 했지만 중진들의 반발을 의식했는지 혁신안에서 결국 빠졌다. 이렇게 ‘앙꼬’가 빠지다보니 의원 숫자 10% 감축과 같은 실현되기 어려운 안과 불체포특권 포기, 의원 세비 삭감 , 본회의 불출석시 불이익 등의 인적 쇄신과 상관없는 액세서리 혁신안만 넘치고 있다. 그나마 현역 의원 하위 20% 공천 배제안이 눈에 띄지만 진짜 혁신한다면 비율을 좀 더 높였어야 했다.

여당은 시늉이라도 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혁신과는 담을 쌓은 것 같다. ‘우린 시스템으로 공천해 문제없다’지만 4년 전 만들어진 이 시스템으로 인적 쇄신을 하기엔 한계가 있다. 시스템 공천은 지역구는 경선이 원칙이고 경선은 권리당원·국민 50:50 여론조사로 하며 전략공천은 20% 내로 최소화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수년간 권리당원을 확보해온 현역 의원에게 더 유리하고, 골수 당원들이 작심하면 또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맹점도 있다. 2020년 총선 경선 때 금태섭 의원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판했다가 괘씸죄에 몰려 무명의 신인에게 충격패한 일이 대표적이다. ‘개딸’을 비롯한 강성 지지층 입김이 더 거세진 지금은 그런 ‘보복’이 더 쉬워졌을 것이다.

공천룰이 그러면 다른 쇄신책으로 보완해야 하지만 그런 움직임도 안 보인다. 여당 혁신안에 맞춘다면 ‘지도부·호남 중진·친이재명계 인사’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목소리가 나와야 하나 비명계 1~2명을 빼곤 다들 침묵하고 있다. 그런 쇄신은커녕 이전에 만들어진 혁신안마저 흐지부지될 위기다. 앞서 ‘김은경 혁신위’는 현역 의원 하위 평가자 감점 대상을 기존 20%에서 30%까지 늘리고 ‘의회직과 당직을 경험한 다선 의원은 용퇴해 달라’는 권고안을 마련했지만 새로 꾸려진 총선기획단이 아직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2년 전 송영길 당대표 시절에도 ‘동일지역 3선 초과 금지’ 쇄신책을 발표했지만 이 역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총선이 4개월여 밖에 안 남았는데 여당과 제1야당이 이렇게 계속 혁신에 미적거린다면 제3세력을 찾으려는 유권자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쇄신을 해도 때가 있고, 모양새도 좋아야 박수 받을 텐데, 너무 늦거나 떠밀려서 하는 모습이라면 쇄신을 하고도 욕먹기 십상이다. 여야가 늦었지만 이제라도 더 과감한 혁신안을 만들고, 내부 불만이 있더라도 국민만 보고 쾌도난마로 쇄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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