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명환 (11) ‘에이즈 퇴치’ 꿈 안고 49세의 나이로 또 미국 유학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역경의 열매] 조명환 (11) ‘에이즈 퇴치’ 꿈 안고 49세의 나이로 또 미국 유학

백신 개발 성공하고도 수익성 따져서
폐기하는 것 보며 과학자로서 자괴감
교수직 내려놓고 다시 배움의 길로…

입력 2023-11-21 03:08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조명환(오른쪽) 회장이 2005년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졸업식에서 졸업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조 회장 제공

서정진 회장과 함께 기업을 창업하는 경험을 한 후 나는 달라졌다. 무엇보다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매우 효과가 높은 에이즈 백신을 개발했음에도 수익성을 따져 백신을 폐기하는 것을 보고 과학자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에이즈를 전공하고 에이즈 퇴치를 간절히 염원한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만약 내가 사회과학적 사고와 논리로 무장한다면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을 설득해 에이즈 퇴치를 좀 더 빨리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교수직을 내려놓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 유학을 가기로 했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은 이론도 가르치지만 경제 경영 행정을 비롯한 협상술, 리더십 등 실전에 필요한 교육으로 유명하다. 나는 현장 교육 중심의 케네디스쿨이 내게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케네디스쿨에 지원할 자격이 안 되었던 것이다. 학부 과정에서 경제 경영 행정 등의 학점을 일정 정도 취득해야 하는데 공학도인 내겐 사회과학 과목 학점이 아예 없었다. 그래서 나는 미8군에 있는 메릴랜드대학에서 과목들을 수강했다.

그 후에는 더 어려운 장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돈이었다. 등록금과 생활비 등 모든 경비를 포함해 1년에 1억원가량이 필요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케네디스쿨이 이 경비를 전액 기부금으로 충당하라는 것이었다. 다른 입학생과 다른 조건이었다. 케네디스쿨은 입학생마다 각자에게 맞는 조건들을 제시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후원금 모금은 셀트리온을 설립하기 위해 30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나는 먼저 후원금 유치 계획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후원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맞춤형 보답을 제안했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회를 파는 분의 아들에게 평생의 멘토가 되어주겠다고 하고 후원금 600만원을 받는 등의 설득 끝에 33명의 후원자로부터 1억1000만원의 후원금을 만들 수 있었다. 후원자를 만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좀 더 깊이 고민했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쓰임 받고자 하는 열망이 더 커졌다.

나는 49세의 나이로 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케네디스쿨에서는 첫 학기 동안 경제학과 수학만 수강하게 했다. 공부하면서 나는 수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학문인 줄 처음 알았다. 굳어진 내 머리가 다시 논리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머리로 바뀌었다.

자연과학은 실험 결과로 나온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을 하면 되는데 사회과학은 일단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와 논문을 읽어야 했다. 그리고 토론이 매우 중요했다. 자기 생각이 정답인 것처럼 표현하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케네디스쿨에서 오래 토론하는 훈련을 받았다.

이곳에서 공부하며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국가 경제 발전’에 관한 논문을 썼다. 이 논문에서 개발도상국이 과학기술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경제 발전 모델을 제안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의 개도국들이 이 논문에 관심을 보여서 이들 국가의 과학기술 정책을 자문하기도 했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

갓플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