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더 늦출 수 없는 일

국민일보

[뉴스룸에서] 더 늦출 수 없는 일

조민영 경제부 차장

입력 2023-11-20 04:08

최근 업무 차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방문했다. 도착한 순간부터 동행한 일행들이 모두 가장 신경 쓴 건 물이었다. 돈을 주고 사 먹는 병에 든 물 외에는 마시는 것은 물론 이 닦을 때 헹굼물로도 사용하지 말라는 게 공통된 말이었다. 아주 좋은 특급호텔 같은 곳 외에는 샤워기에 꽂아 쓸 휴대용 필터도 챙겨와 써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날이 덥고 습한 동남아시아에선 ‘물갈이’로 탈 나는 경우가 많다니 조심할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호텔 조식 식당에 음용수로 비치된 것도 가급적 먹지 말고 씻는 물도 따로 신경쓰라는 건, 외국인 입장에서 하는 다소 과장된 얘기로 여겨졌다. 그런데 취재 차 만난 현지인들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르지 않았다. 만나는 이들마다 아무 물이나 마시지 말고 미네럴 워터를 사 마시라고 했다. 그제야 상수도 보급률이 60%대에 그치며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강을 상수원으로 둔 자카르타에서 ‘물 조심’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체감됐다. 현지에서 만난 한 기자는 자카르타의 빈곤층에겐 물을 사 먹는 비용이 심각한 문제라고 전했다. 저소득층에서 가계 지출의 80%가 물값이라는 통계도 있다고 했다. 이쯤되면 물을 조심하는 차원이 아니라 물이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상수도를 믿지 못하고, 사먹는 물 값은 감당할 수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건 지하수뿐이었다. 한정 자원인 지하수를 계속 퍼내 쓴 결과는 고갈이다. 지하수가 고갈되면서 자바섬 북부에 위치한 자카르타 지반이 빠른 속도로 내려앉아 바다로 잠기고 있다던 영화 같은 뉴스는 현실이었다. 2030년에는 북부 자카르타 90%가 해수면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 상태다.

대형 쇼핑몰과 초고층 빌딩이 도심을 가득 채우고, ASEAN 정상회의를 유치할 정도의 국제 도시인 자카르타가 대기부터 수질까지 온갖 오염과 지독한 과밀을 방치한 끝에 맞닥뜨린 상황이다. 인도네시아는 아예 수도 이전을 선언했다. 지리적 이유부터 인구 과밀과 기후 온난화 등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는데, 사실상 정책적으로 자카르타를 포기한 것이다. 최근 자카르타가 지하수 대용량 사용 규제에 나선 결과 지반 침하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는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도시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는 걸 정부 스스로 인정한 상태인 셈이다.

문제는 미루면 커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환경, 기후 문제는 한 번 망가지면 돌이키기 힘든 ‘비가역성’ 때문에 더욱 그렇다. 더 큰 비용과 대가가 필요하고, 혹은 대가를 치러도 돌이키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초등학생도 배우는 상식이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상식은 현실에서 쉽사리 무시된다. 변화를 실행하려는 선택은 현실적 이유로 미뤄질 때가 많다. 자카르타의 지하수, 상수도 문제는 알면서도 특단의 조치를 하지 못하고 흘러가게 둔 결과다. 수도 이전을 결정했지만 새 수도가 완성될 때까지, 완성된 이후에도 좋은 환경으로 이전하지 못할 저소득층에게 물 문제는 계속될 현실이다. 주민들이 마실 물을 어떻게 해결할지 등에 대한 대안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구매력에 맡겨 놓고 생수회사만 돈을 번다는 지적은 이어진다.

자카르타를 보며 최근 정부가 기후 위기 대응책 중 하나인 일회용품 사용 규제 시한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한 일이 떠올랐다. 현 정책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면 보다 유의미한 정책을 찾으려는 게 이치에 맞았겠지만 정부의 선택은 또 한 번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이었다. 해결을 늦추고 미루다가는 포기하고 떠나는 선택지만 남을 수 있다는 자카르타 사례의 경고를 우리 모두 기억할 때다.

조민영 경제부 차장 mymi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