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요양병원 환자 차례로 사망… 경찰은 왜 병원장을 의심했나

국민일보

[단독] 요양병원 환자 차례로 사망… 경찰은 왜 병원장을 의심했나

외국서 사형 집행에 쓰는 염화칼륨
결핵환자 2명에 투여해 살해 혐의
직원 녹취록이 스모킹건 될 수도

입력 2023-11-20 04:05
의료행위 과정에서 환자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요양병원 원장 이모(45)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치고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일어난 ‘결핵 환자 살해 의혹 사건’과 관련, 환자 2명이 2015년 9월과 11월 연이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 시기 병원장에게 고위험 의약품인 염화칼륨(KCl)을 건넨 행정직원이 남긴 녹취록을 확보했는데, 여기에 병원장의 범행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19일 경찰과 국민일보 취재 등을 종합하면 병원장 이모(45)씨는 지난 2015 년 9월쯤 행정직원 A씨로부터 염화칼륨을 건네받았다고 한다. 30여분 만에 60대 남성 환자가 숨졌다. 이 원장은 같은 해 11월에도 80대 여성에게 똑같은 일을 벌였다고 한다. 이들은 2급 전염병인 결핵에 걸린 상태였으나 병원 측은 유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사인을 지병으로 인한 자연사라고 통보받은 유족들은 부검 없이 장례를 치렀다.

하지만 경찰은 이 원장이 노인들에게 염화칼륨을 주입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A씨가 염화칼륨을 건네기 전 이 원장과 범행에 대해 나눈 대화 녹취록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리한 병원 확장 이전으로 수십억원대 빚에 시달리던 이 원장이 결핵 환자 발생으로 병원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범행했다는 의혹이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사건 발생 8년 만에 첩보를 입수, 내부자 진술 등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이 원장에게 염화칼륨을 건넨 행정직원 A씨가 ‘(원장이) 염화칼륨을 달라고 해서 주기만 했지 나는 (원장이 투여할지) 정말 몰랐다’는 취지의 말을 주변에 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염화칼륨은 해외에서 사형수의 심장정지제로 사용되는 약물 중 하나다.

경찰은 해당 병원을 압수수색하면서 당시 환자의 사망 시기와 염화칼륨 투여 시점 등을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난 10일 살인 혐의로 이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당시 범행을 도운 것으로 보이는 병원 행정직원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법원은 피해자들의 직접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행위 자체에 대한 직접증거가 부족해 범죄 성립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시체 없는 살인사건’으로 불렸던 고유정 사건을 담당한 이정도 변호사(법무법인 백양)는 19일 “정황 진술만으로는 살인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면서도 “염화칼륨을 건넸다는 A씨가 범행에 대해 자백한 녹취록이 있다면 이번 사건의 ‘스모킹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 정이원 변호사(법률사무소 이원)는 “염화칼륨이 흔히 수액에 쓰이기도 하지만 필요 없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썼다면 살해 의도를 의심해볼 만하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직접 증거에 준하는 명확한 증거들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병원장의 행위 상황에 대한 묘사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의 법률대리인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사기관에서 수사 중이라 밝힐 수 있는 게 없다”며 “의뢰인은 여론의 판단이 아닌 법원의 판단을 받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김용현 김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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