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0년 은사도 가짜… 아차하면 당하는 ‘무서운 세상’

국민일보

[단독] 20년 은사도 가짜… 아차하면 당하는 ‘무서운 세상’

[거대한 사기판 대한민국] <상>

영어과외로 친분… 매년 친목 다져
투자금 반환 요구하자 연락두절
재산범죄 중 사기가 51.8% 차지

입력 2023-11-21 04:07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A씨(64)는 2000년대 초반 초·중·고 학생들을 상대로 연세대 영문과 출신이라며 영어 과외를 했다. 20년간 만남을 이어온 그의 제자들은 그가 영어를 꽤 잘 가르쳤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A씨가 내세운 이력은 모두 거짓이었다. 실제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 전부였고, 심지어 사기로 처벌받은 전과도 있었다. 연세대 영문과 교수라던 20년 지기 과외 선생님은 알고 보니 투자 사기꾼이었다.

피해자인 제자들은 현재 명문 사립대 교수, 국립대 병원 의사 등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들이다. 이들은 학교나 나이 등 접점이 없었지만 A씨를 교집합으로 20년 가까이 1~2년에 한 번씩 생일 등 기념일마다 모여 친목을 다졌다. 모임은 A씨가 주도했고, 피해자들은 A씨의 신분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었다고 한다. 한 피해자는 “옷이나 가방 대부분이 명품이었다. 백화점 VIP여서 대신 롤렉스 시계를 구매해주겠다고 한 적도 있어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쪽같이 신분을 속인 A씨의 사기 행각은 이후 과감한 투자 사기로 이어졌다. A씨는 2011년 7월부터 지난 5월까지 본인 동생이 운영하는 부동산 정보업체를 앞세워 투자를 하면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사기를 쳤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동생이 해당 사업을 접은 뒤에도 투자를 유도했다.

A씨의 꼬리가 밟힌 것은 지난해 7월, 투자금 1억여원을 돌려 달라는 제자의 부탁에 연락이 두절되면서부터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제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A씨의 실체를 알게 됐다.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는 A씨를 사기 혐의 등으로 20일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제자들 4명뿐 아니라 지인 2명을 상대로도 투자 사기 범행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가장 큰 피해액 4억2000만원을 비롯해 20억원을 챙겼다”고 설명했다.

A씨 같은 가짜 교수와 가짜 재벌 등 ‘사칭’ 사기꾼이 넘쳐난다.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전청조씨 사건처럼 각종 사칭 범죄에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다. 거대하고 정교한 사기판이 되어가고 있다.


사기 범죄의 횡행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법무연수원의 2022 범죄백서 중 ‘재산범죄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사기 범죄는 재산 범죄의 절반을 넘는다. 10년 전인 2012년 재산 범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절도(45.9%)는 2021년 29.0%로 떨어진 대신 사기는 37.8%에서 51.8%로 급증했다. 재물을 훔치는 것에서 교묘하게 사람을 속여 이익을 취하는 방식으로 범죄가 지능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일보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사기 범죄의 실태와 원인, 해결책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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