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우정은 삶을 완전하게 만든다

[너섬情談] 우정은 삶을 완전하게 만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입력 2023-11-29 04:06

친교는 삶을 공유하고 서로를
본받아 덕을 익히는 과정
연말은 우정 다지기 좋은 때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우정은 재산보다 낫다. 그 무엇도 재산을 영예롭게 만들진 못한다.” 큰 재산보다 좋은 친구가 삶을 풍요롭게 한다. 나이 들수록 이익으로 서로 벗 삼는 존재는 큰 의미 없지만 ‘나의 절반’ ‘제2의 나’라 할 수 있는 벗은 우리가 무력할수록 더 소중하고, 심지어 죽음 후에도 귀하다. 친구는 기억을 통해서 부재하는 우리를 존재하게 해준다. “나를 기억하라.” 이는 우정의 영원한 계명이다.

‘서양 선비, 우정을 논하다’를 보면,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는 서양의 유명한 우정론을 가려 뽑아 동양에 소개한다. 본래 ‘교우론(交友論)’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온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책에서 우정을 다룬 100구절을 골라 엮은 잠언집이다. 중국인들이 우정을 중시함을 깨달은 리치는 서양에 대한 거부감을 낮추고 깊은 호감을 사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이 인기를 끌면서 리치는 중국 사회 내부에 완전히 스며들었고 선교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위의 구절도 이 책에 나온다.

성호 이익, 연암 박지원 등도 이 책을 읽고서 영향을 받았다. 번역자 정민에 따르면 그들은 당색으로 나뉘고 신분으로 갈린 세상에서 명리를 벗어난 벗들과의 교유에서 숨 막히는 삶의 활로를 찾았다. 우정의 도를 통해서만 암울한 세상을 건너갈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 온 사회가 갈가리 찢어져 서로 적대하는 패거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마찬가지 심정일 테다.

“우정은 가난한 자의 재산이 되고, 약한 자의 힘이 되며, 병든 자의 약이 된다.”(키케로) 그러나 진짜 우정을 쌓는 일은 쉽지 않다. 순수한 사귐인 소교(素交)는 극히 드물고, 온 세상에 이익을 좇는 장사치들의 사귐인 이교(利交)만 흔하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말했다. “재물과 형세를 살펴 남과 벗이 되는 사람은 그 재물과 형세가 없어지면 바로 물러나 떨어진다.” 이교에는 우정이 있을 수 없다.

친밀함이 우정의 증거가 되지도 않는다. “친밀한 벗이 많다는 말은 친밀한 벗이 없다는 말”(디오게네스)과 같다. 게다가 “속된 벗이 함께하면 즐거움이 기쁨보다 많지만 헤어지고 나서는 근심이 남는다.”(플루타르코스) 잘못된 사귐이 늘어날수록 부끄러움과 근심거리만 늘어난다. 패거리 지어서 우르르 몰려다니며 세상을 다 가진 듯 들썩여봐야 인생만 허비할 뿐이다. “무익한 벗은 시간을 훔치는 도둑이다.”

우정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도 쉽게 망한다. “벗이란 찾는 데 오래 걸리고, 얻기가 드물며, 간직하기도 어렵다.”(히에로니무스) 우정은 허물없는 사이가 아니라 어려운 사이, “살아 있는 방법으로 나를 선으로 권면하고 나무라는 사이”(세네카)이다. 사람은 벗에게서 최상의 적을 찾아낼 때 더 나은 사람이 된다. “벗과 사귀는 것은 의사가 질병을 대하는 것과 같다.”(아우구스티누스) 의사가 병을 고치기 위해 그 입을 쓰게 하듯이, 우정은 벗의 악함을 바른말로 수술한다. 최고의 우정은 친구에게 쓰라린 눈물을 감당하게 만든다. 친구는 함께 세월을 보내면서 삶을 공유하고, 서로를 본받아 덕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덕의 함양이 우정의 본질이라면, 만나지 않고도 서로 벗이 될 수 있다. 박지원은 이를 천애지기(天涯知己), 곧 아득히 먼 데서 나를 알아주는 친구라고 불렀다. 글로 주고받는 우애, 공동체 없는 공동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고독의 친구들’이라고 불렀다. 수다나 잡담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공들인 언어로써 서로를 이끄는 관계 말이다.

만남이 잦든 드물든, 우정의 도는 우리 삶을 완전하게 만든다. 친구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 할 수 없다. 연말이다. 모두 한 번쯤 친구를 떠올리고 우정을 다지면 좋을 것 같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