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1980 서울의 봄, 2023 서울의 겨울

[이명희의 인사이트] 1980 서울의 봄, 2023 서울의 겨울

입력 2023-12-05 04:07

영화 '서울의 봄' 흥행에는
18년 군부 독재 끝내고
민주주의 시작 시점에
신군부 세력이 역사 후퇴시킨
안타까움 배어 있어

거대 양당 패거리 정치는
40년 전 하나회 행태 연상
민생도 국민도 안중에 없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요즘 국회의원들을 볼 때 실망이 큽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형편없습니다. 민생 우선을 뒤에 붙이지만 민생 우선이 뭡니까, 제 배지가 우선이지. 국민이 바보인 줄 압니까. 국민을 이용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국회의원들은 내년 4월에 다 떨어져야 합니다.”

지난 10월 국민일보가 주최한 제25회 크리스천리더스포럼에서 말씀을 전한 박조준 원로목사의 일침이다. 올해 구순인 노목회자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요즘 정치인과 목사들을 질타하며 5공 신군부 치하의 기억을 소환했다. 박 목사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전 국가보안사령관 발령을 앞둔 전두환의 머리에 손 얹고 안수기도해준 일화부터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뒤 미국 순방길에 동행해 달라거나 국가조찬기도회 설교를 맡아 달라는 등 신군부 세력의 요청을 거절한 일화들을 소개했다.

“국토를 방위해야 할 군인이 나라를 점령해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교회에서 설교할 때마다 남산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에서 전화가 걸려와 “이 ○○야 죽을래? 어디 두고 보자”며 겁박했다고 했다. 그러나 “목사의 사명은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기에 전혀 무섭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그가 담임하던 영락교회 서리집사로 있던 윤성민 합참의장이 “목사님, 우리나라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전두환이) 최전방 부대를 빼서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김일성이 북에서 쳐내려왔더라면 서울이 2시간 만에 점령당했을 텐데 하나님이 지켜주셨습니다”라고 말했던 것도 소개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은 박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1979년 12월 12일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9시간 동안 최전방 부대를 서울로 집결시키며 권력을 찬탈하려는 신군부세력과 이를 진압하려는 장태완(극중 인물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 등 진압군의 대치 상황을 재연했다. 행주대교에서 서울로 진입하려는 공수부대에 혈혈단신 맞서는 이태신의 모습 등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공관에서 총성이 들리자 놀라서 잠옷 차림으로 대피했던 노재현 국방장관이나 속절없이 권력을 빼앗기는 무능한 최규하 대통령의 모습은 실제다. 영화를 본 뒤 심박수와 스트레스지수를 체크해 SNS에 올리는 ‘서울의 봄 챌린지’가 유행할 만큼 분노를 유발하는 영화다. 관객들이 더 화가 나는 것은 18년간 암울했던 군부독재를 끝내고 이제 막 민주주의가 시작될 ‘서울의 봄’이 왔는데 또 다른 군부세력에 의해 역사가 뒷걸음친 안타까움 때문일 터다. 영화를 보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긴다. 1980년대 신군부 정권하에서 수백명의 무덤을 밟고 수만명의 희생 위에 얻어낸 값진 민주주의다. 그런데 오늘 그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얼마 전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의 신뢰가 부족하고 문제해결 능력도 신통치 않은 거대 양당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치달으며 극한투쟁을 계속한다”며 “양대 정당은 붕괴한 것이나 다름없을 만큼 허약해졌고, 강성 지지자들은 제도를 압도할 만큼 강력해졌다”고 비판했다. 특히 “제1야당 민주당은 오래 지켜온 가치와 품격을 잃었고, 안팎을 향한 적대와 증오의 폭력적 언동이 난무한다. 과거의 민주당은 내부의 다양성과 민주주의라는 면역체계가 작동해 여러 문제를 걸러내고 건강을 회복했다는데 지금은 리더십과 강성 지지자들의 영향으로 그 면역체계가 무너졌다”고 일갈했다.

이재명 당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발목잡힌 민주당과 ‘개딸’로 대변되는 강성 지지자들의 아집과 독선을 비판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의 정부로 기록될 것”이라는 윤석열정부에 대한 공격도 틀린 말은 아니다. ‘검찰 공화국’을 만들어버린 것도 부족해 법무부 장관과 그 부인까지 나서 뜬금없이 정치적 행보를 하고 총선에 차출되는 모양새는 불편하다.

마주 달리는 기차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대선을 치른 지 2년이 다 돼 가는데 여야 양당은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두 사람의 혈투를 계속하고 있다. 양당의 패거리 정치는 40여년 전 신군부 반란을 주도한 하나회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두 당은 표 뺏기에만 혈안이 돼 민생도, 국민도 안중에 없다. “내 조국이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사람’ 하나 없다는 게 그게 ‘나라’냐”는 이태신 장군의 한탄이 들리는 듯하다.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