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이준석과 이낙연의 ‘선택’

[돋을새김] 이준석과 이낙연의 ‘선택’

하윤해 정치부장

입력 2023-12-05 04:02

내년 4월 10일 실시될 제22대 총선이 5일로 정확히 127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총선 구도는 여전히 안갯속에 있다. 신당 출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있다. 두 명의 전직 당대표가 당권싸움에 밀려 ‘신당설’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권력의 냉정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민주화가 제도적으로 안착된 1987년 체제 이후 아홉 차례 총선이 치러졌다. 이 가운데 여야 거대정당의 ‘일대일’ 맞짱 승부로 진행된 선거는 ‘사실상’ 2020년 4월 21대 총선이 유일하다. 그 선거에서 거대 여야를 제외하고 지역구에서 당선된 후보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 1명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총선은 대부분 다자구도였다.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혈투를 거쳐 자유선진당(이회창), 국민의당(안철수), 정의당,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등이 거대 여야의 틀을 깨기 위해 분투했다.

다당제 찬성론자들은 한국 정치 상황에서 양당 체제는 말이 되지 않는 구조라고 주장한다. 올해 8월 기준으로 한국에 사는 5137만명의 다양한 이해와 고민을 두 개의 정당이 해결할 수 없다는 논리다. 지역적·이념적으로 양극화되면서 양당제가 더욱 공고해지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선거를 앞두고 신당이 갑자기 출현하는 것은 한국 정치의 역동성보다는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새 정치세력이 부상하는 게 아니라 기존 정당에서 갈등을 빚었던 인사들이 나와 신당을 차리는 모양새도 인공지능(AI)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준석 전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의 결단에 따라 내년 총선도 여러 정당이 맞붙는 구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엄·근·진’(엄격·근엄·진지) 이미지로 발언이 진중한 이낙연 전 대표가 신당 창당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은 것은 예사롭지 않은 시그널이다.

하지만 신당 진행 상황에서는 차이가 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신당 창당을 위한 기술적인 준비는 끝났다”고 말했다. 현재 단계에서 ‘이낙연 신당’은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비명(비이재명) 학살’을 하지 말라는 견제구에 가깝다. 한 비명계 의원은 “신당 창당을 위해 구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친명(친이재명) 지도부가 ‘비명 학살’을 감행할 경우 신당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석 신당’은 TK(대구·경북) 지역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낙연 신당’도 호남에서만 후보를 낼 경우 야권 분열로 인한 총선 패배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두 전직 당대표가 각각 보수와 진보의 심장에서 자신들의 전쟁을 치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연배도 다르고, 정치 스타일도 상반되고, 살아온 이력에도 공통점이 없는 두 사람이 총선을 앞두고는 데칼코마니 같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과 이준석 전 대표, 민주당과 이낙연 전 대표 모두 ‘양비론’에 휩싸여 있다. 여야에는 특정 계파가 당을 주도하면서 비주류를 껴안지 못하고 있다는 질타가 매섭다. 반면, 두 사람을 향해선 내부총질에만 여념이 없다는 비판이 따라다닌다. 특히 이준석 전 대표를 향해선 “너무 멀리 갔다”는 지적도 많다. 여야 모두에서 두 사람을 당권싸움의 패배자로 깎아내리며 “밖에 나가봤자 아무 파괴력이 없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신당이 태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창당하더라도 초라한 행색을 할 수도 있다. 다만 롤러코스터 같은 한국 정치에서 127일은 긴 시간이다. 만약 두 사람의 신당이 파괴력을 갖는다면 그 동력은 ‘못난 친정’ 덕분일 것이다. 여야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이유다.

하윤해 정치부장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