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직접 만든 혁신위 뭉개는 與 대표… 이래서야 신뢰 얻겠나

[사설] 직접 만든 혁신위 뭉개는 與 대표… 이래서야 신뢰 얻겠나

입력 2023-12-05 04:05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면담 전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런 식이라면 총선은 해보나마나일 것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지도부가 혁신위원회의 지도부·중진·친윤 희생(총선 불출마나 험지 출마) 혁신안을 대놓고 깔아뭉갰다. 일찌감치 이를 핵심 의제로 제시한 혁신위는 당사자들 반응이 없자 4일로 시한을 정해 답변을 요구했는데, 지도부는 이날 최고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하지도 않았다. 그리한 까닭이라며 내놓은 설명은 헛웃음을 자아냈다. 김 대표는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도 혁신위 요구에 건건이 반응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제부터 민주당이 우리나라 정당 정치의 기준이 됐나. 역대 최악이라 평가받은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 사례를 여당 대표가 무슨 롤모델처럼 꺼내 들어 혁신안 뭉개기를 합리화했다. 당대표가 이런 생각을 가진 마당에 총선이 제대로 될 리 있겠는가.

정치인의 말 바꾸기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김 대표는 새로운 경지를 보여줬다. 보궐선거 참패 이후 쇄신의 여러 방법 중 혁신위를 택한 것도, 인요한 위원장을 초빙한 것도, “전권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그였다. ‘당이 살 길’이라며 혁신위를 직접 띄운 사람이 그 혁신위에서 희생을 요구하자 불과 한 달 만에 ‘자신이 살 길’을 택해 혁신을 무력화하고 있다. 이런 행태는 조국 사태 당시의 문재인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며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지시했다가 정말 그런 수사가 시작되자 “절제된 수사”로 180도 말을 바꿨고, 이는 윤 총장을 야당 대선후보로 만든 출발점이 됐다. 그렇게 등장한 윤석열정권의 여당 대표가 지금 지난 정권의 실패를 부른 표리부동과 내로남불의 길을 답습하는 중이다.

당대표가 이렇게 말을 뒤집는 정당의 공약을 어떤 유권자가 믿을 수 있겠나. 그런 당과 한 몸인 정부를 어떤 국민이 신뢰하겠나. 국민의힘은 보궐선거 참패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스스로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