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수] 내 손은 내 것 아닌 하나님 함께하는 손… 영육 치료하는 데 쓴다

[나와 예수] 내 손은 내 것 아닌 하나님 함께하는 손… 영육 치료하는 데 쓴다

사람의 육체·영혼까지 돌보는 의사
부평내과 원장 한기돈 계산교회 장로

입력 2023-12-0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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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인천 부평내과 원장 한기돈 장로. 고등학교 시절 성령 체험을 했던 한 장로는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 이 시간에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책망도 하시는 두려운 분”이라고 말했다. 장진현 포토그래퍼

인천 부평내과 원장 한기돈(67·계산교회) 장로는 지난 6월 사랑하는 아내 김보경 여사를 먼저 떠나보냈다. 신앙의 동반자였던 아내가 원발성 복막암이라는 희소암으로 투병하던 20개월은 한 장로에게도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 기간 의인 욥의 고난을 다룬 욥기를 묵상하며 견뎠다. 아내를 보내고 하나님께 잠깐 투정도 했다. 그때 하나님은 마음속에서 한 장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악한 사람만 먼저 데려가면 세상에 선한 사람만 남을 거 아니니. 그러면 나중에 세상 멸망을 어떻게 시키니. 선한 순서대로 데려가야지. 그러니까 네가 왜 먼저 안 가는지 알겠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한 장로는 “선한 사람 순서로 가니까 제가 덜 선하다는 거겠죠”라며 웃었다. 한 장로는 늘 하나님과 대화하는 습관이 있다. 처음엔 하나님인지 몰랐지만 큰 문제든 사소한 문제든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대화하며 해결책을 찾았다. 그는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 했다는 얘기”라고 했다. 한 장로가 하나님과 대화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데이 크리스천 가정에 닥친 시련

한 장로는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평범한 신앙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청년 때부터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가장 아버지를 따라온 가족이 주일에만 예배를 드리는 ‘선데이 크리스천’ 가정이었다. 한 장로는 “매년 한 번씩은 주일에도 도봉산으로 가족 여행을 갔었다”고 했다. 한 장로 자신도 주일학교에 다녔지만 신앙이 왜 중요한 것인지 큰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한 장로 가정에 큰 시련이 닥친다. 흔히 ‘김신조 사건’으로 알고 있는 ‘1·21 청와대 기습 미수 사건’이 일어났던 1968년. 당시 한 장로의 큰 형은 군 복무 중이었다. 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복무 기간 3개월 연장됐다. 그 연장 기간 동안 큰 형은 사고로 사망한다. 집안은 우울 그 자체였다. 당시 인기를 끌던 서부 드라마 ‘보난자’를 볼 수 없었다. 한 장로 집처럼 삼 형제가 주인공인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장로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는데 가족 중 누나 한 사람만 왔다. 우울한 분위기는 3년간 계속됐다.

한기돈(앞줄 맨 왼쪽) 장로의 어린 시절 가족사진. 뒷줄 맨 오른쪽이 군 복무 시절 사고로 사망하기 전 큰 형.

온 가족의 성령 체험

신앙이 독실했던 큰 형 친구 어머니와 한 장로 부모님이 교류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한 장로의 부모님은 기도회에 열심히 참석했고, 매주 목요일이면 집에서 온 가족이 예배를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로 집에 ‘오순절 역사’가 일어난다.

“그날 예배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이 방언을 받고,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어요. 그 당시 저희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이 모두 성령 체험을 했어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한 장로는 “교회 나가는 것만으로 신앙이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면서 “구하면 얻을 것이며, 찾으면 찾을 것이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말씀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 한 장로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육체와 영혼을 함께 치료하는 의사

영적인 눈이 열린 뒤 한 장로의 마음에는 오직 하나님 생각뿐이었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매일 성경을 50장씩 읽었다. 걷거나 차를 타고 있어도 하나님께 기도했다.

“마음속에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높은 산 정상을 바라보면 마음속 음성은 ‘힘들더라도 산꼭대기에 올라가라, 그러면 산 너머에 준비된 멋진 광경을 보지 않겠니’라고 하고, 절벽을 보고 있을 때는 ‘밧줄을 내려줄 테니 몸에 단단히 묶어라, 그러면 내가 끌어 올릴게’라고 하시기도 했어요. 이렇게 항상 주님을 생각하면서 끝이 없는 대화를 이어갔어요.”

당시 한 장로에게 삶과 신앙은 하나였다. 공부하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공부했다. 오히려 공부가 잘됐다. 고3이 되자 진로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는 당시 인기 있던 공대를 가라고 했다. 하지만 한 장로는 신학대와 의대를 염두에 뒀다. 그는 “당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대부분 신학교 선택을 당연하게 여기던 때였다”고 말했다.

“새벽기도를 하면서 ‘사람의 육체와 영혼을 함께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기도를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의사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가톨릭의대를 들어갈 수 있었어요.”

말씀과 삶의 일치

의대 시절 출석하던 교회 목사님의 질문 한마디로 신앙의 단단한 기초를 세울 수 있었다. 당시 목사님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대답할 수가 없었다. 목사님은 “성경 말씀이 삶으로 옮겨졌을 때 올바로 해석되는 것”이라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원수를 사랑하고 있을 때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장로는 “성경을 잘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기독교인들이 많다”면서 “말씀을 삶으로 옮겨서 실천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으로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 장로는 당시 포목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일화를 소개했다. 영적으로 거듭난 뒤 아버지는 대금만 지급하고 물건을 받지 못하는 사기를 당한 적이 있었다. 주위에서는 사기범을 고발하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돈은 포기하고 사기범을 찾아 하나님께 인도하겠다”고 말하고, 결국 그 사람을 찾아 하나님 품에 안기게 했다. 한 장로는 “아버지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셨다”면서 “나중에 아버지는 ‘그해 사기로 잃었던 돈의 4배를 벌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신앙 바로 세운 아내의 따끔한 한마디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과정을 마치면서 임상과를 선택해야 했을 때, 육체와 영혼을 치료하기에 내과가 가장 좋다고 생각해 내과를 선택했다. 1987년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였다. 대학병원은 엄두도 못 냈고 준종합병원을 수소문했지만 그때마다 길이 막혔다. 그때 가톨릭의대 부속 성모자애병원(현 인천성모병원) 호흡기 내과에서 근무 제안이 왔다. 레지던트 시절 인연이 있던 내과 주임 교수의 허락을 받고 조교수로 채용됐다. 하지만 한 장로가 근무하는 호흡기내과 과장의 추천을 거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근무하는 내내 주임 교수의 뒷배로 들어왔다는 오해와 함께 선배 교수들의 차가운 눈초리와 멸시를 피할 수 없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전공의를 교육하며 진료를 했지만 평생 그렇게 괴롭고 힘든 날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신앙도 나태해졌다. 그때 아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나님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예요. 고난도 지휘하고 계세요. 그런데 당신은 하나님께 ‘왜 나한테 고난이 있습니까’라고 불평하잖아요. 그러면 하나님께 대항하는 거 아닌가요.”

한 장로는 “이 말로 인해 내가 만난 어려움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고,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두고 고민하고 기도하던 때였다. 그 무렵 영성 수련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왜 나를 위해 살려고 하니.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함께 사는 것이 어떻겠니’라고 말씀하셨다. 수련회를 마치고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급하게 차를 몰 때 운전대를 잡은 손이 내 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손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한 장로는 “그동안 내 손으로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려고 했지만, 다시 돌아보니 내 손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손인 것을 알게 됐다”면서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하셔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함께 행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와 모잠비크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하는 한 장로.

이후 한 장로는 대학병원 시절이나 개업한 뒤에도 환자를 대할 때 하나님과 협진한다고 생각한다. 98년부터 거의 매년 나가는 해외 의료 선교지에서 만나는 이방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실수하거나 문제에 부딪힐 때는 하나님을 찾고 도움을 구하면 어김없이 하나님은 길을 안내해 주신다”면서 “처음 만나는 환자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면 최선을 다해 진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몽골 선교 당시 찍은 가족 모습.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세상적인 욕심을 이루는 것은 허무함만이 남게 되겠지만,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뜻을 이루는 삶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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