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다중 위기 시대, 더 소중해진 ‘인간’과 ‘진실’의 가치

[사설] 다중 위기 시대, 더 소중해진 ‘인간’과 ‘진실’의 가치

창간 35주년의 다짐

입력 2023-12-11 04:01
경남 통영시 한산면 소매물도에서 바라본 등대섬. 해안 절벽 사이로 솟은 등대가 어둠이 파도치는 바다로 빛줄기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달빛 한 점 없는 밤바다를 100년이 넘도록 지키고 있습니다. 창간 35주년을 맞은 국민일보는 격변하는 세상, 위태로운 생태계, 위협받는 진실의 시대에서 저 등대와 같이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불확실성이 파도치는 한국 사회를 향해 공정성과 객관성의 등불을 켜겠습니다. 35년간 변하지 않은 ‘사랑, 진실, 인간’의 가치로. 통영=윤웅 기자

세상이 격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불안하다. 과거는 무사태평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현재 인류가 직면한 변화는 그 폭과 깊이, 속도에서 유례가 없다. 한국만 보더라도 공동체의 지속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저출산, 성장 동력 급락, 북한의 군사 위협 증대 등 거대한 위험이 한꺼번에 닥치고 있다. 미·중 갈등 격화, 세계의 약한 고리 곳곳에서 터지는 전쟁, 자유무역 퇴조 등에서 보이듯 미국 주도의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나라·지역 넘어 전 지구·생태적 위기

전쟁이 일상이 되는 불길한 징조가 보인다. 기후 변화는 호모 사피엔스 인류는 물론 지구에 거주하는 모든 생명체의 미래를 안갯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흔했던 생물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바닷물이 차오르며, 절기와 계절의 순환이 흔들리고 있다. 삶에 안정감을 주었던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이라는 첨단기술은 어떤가. 높은 지능을 갖춘 이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특이점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삶의 편의성과 생산성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지만, 인간을 압도하고 대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인권과 생명, 양보할 수 없는 가치

이런 다중·복합 위기의 시대에 국민일보가 창간 35주년을 맞았다. 창간 당시 내건 사랑, 진실, 인간이라는 사시(社是)의 울림이 각별하다. 본보는 기독교적 가치를 세상에 바로 세우면서도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언론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기독교 교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사랑과 화해, 억눌린 자에 대한 배려 등 기독교적 가치가 지면 곳곳에 스며들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공동체의 발전과 향상을 위해서는 구성원의 희생과 도덕성, 정치 리더십이 중요함을 일깨워 왔다. 무엇보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 차이에 더해 지역, 세대, 성(젠더)별 갈등까지 심해지는 현실에서 화해와 치유를 소망해 왔다.

한국 사회가, 세계가, 인류가 직면한 거대한 도전을 보면서 다시 사랑, 진실, 인간의 창간 정신을 되새긴다. AI로 대변되는 급속한 기술 발전은 기존의 부·소득 격차를 넘어 대규모 실업, 인간의 정체성 위기, 극심한 정보 격차 등 한층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를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사회와 국가가 손쉽게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에 매몰될 수 있다. 본보는 뒤처지는 계층과 직업군이 국가 정책 의제와 사회적 담론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폭력과 인권 침해에 더욱 날카롭고 단호한 감시자가 될 것이다. 생태계 위기와 전쟁은 단순한 폭력을 넘어 인간의 생존, 생명 자체를 위협하는 체계적 위험이다.

기독교 정신에 바탕한 정론 더 절실

이런 체계적 위험을 과소평가하거나 방관하면서 인간의 존엄을 언급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인권과 생명의 가치는 양보할 수 없는 본보의 가치다.

무엇보다 언론매체에 와닿는 위험은 모호해진 진실이다. AI 시대에 진실의 가치는 절실하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진짜 같은 가짜로 인해 객관적 사실·진실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진실성의 위기(Crisis of Authenticity)’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최우선 원칙은 어떤 기술이라도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AI가 인류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강하는 기술이어야 한다는 ‘인간 중심’의 초점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본보는 이 점을 끊임없이 공동체에 상기시킬 것이다. 더 복잡하고 많은 도전이 닥치더라도 기독교적 가치에 바탕을 둔 언론의 사명을 잊지 않을 것이다. 본보의 창립 정신이 담긴 표어를 다시 되뇌어본다. ‘인간을 존엄하게, 진실을 온누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