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스윙보터의 마음을 얻는 혁신

[고승욱 칼럼] 스윙보터의 마음을 얻는 혁신

입력 2023-12-20 04:20

슬랩스틱 코미디 정치 때문에 총선 승패가 혁신에 달렸지만
여야 모두 쇄신안 실패한 뒤로 현역·중진 의원 교체만 남아
당권 강화만을 위한 물갈이로 흔들리는 중도층 잡을 수 없어

22대 총선의 승패는 결국 혁신이 좌우할 것이다. 그만큼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높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부터 19개월 동안 정치는 그냥 싸우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진흙탕에서 뒹구는 슬랩스틱 코미디만도 못하게 됐다. 대선 후보 시절 “진영에 관계없이 인재를 발탁하겠다” “야당 인사가 청와대에 올 수 없다고 한다면 내가 국회의사당 식당으로 찾아가 만나겠다”고 했던 윤 대통령은 자신의 약속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버렸다. 원내 과반을 훌쩍 넘는 거대 야당은 대선 불복 말고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을 정도로 거칠게 내달린다. 그 속에서 의원들은 장기판의 졸처럼 움직인다. 국회의원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러니 못난이 경쟁이 가장 유력한 총선 전략이다. 상대당보다 조금만 덜 못나게 행동하면 이길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어이없지만 혐오를 부르는 지금 여의도 정치의 단면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노회한 선거 전략가들이 혁신을 바라는 유권자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 최근 여야의 정당 지지율은 30%대 초반에 갇혀 있다. 약간의 부침은 있지만 여야 모두 집토끼는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선거는 지지하는 정당을 정하지 않은 부동층인 스윙보터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산토끼를 잡으러 나서야 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서울의 지역구 49곳 중 41곳, 경기도의 59곳 중 51곳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2년 뒤 20대 대선에서 윤 대통령은 총선 지역구 기준으로 서울 18곳, 경기도 9곳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이렇게 총선과 대선에서 선택이 달라진 지역구가 전국적으로 50곳이 넘는다. 대선 3개월 뒤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25개 자치구 모두에서 50%가 넘는 표를 얻었다. 스윙보터는 생각보다 위력적이었다. 민주당의 50년, 100년 집권론이 순식간에 모래성이 됐다.

그러니 이들을 향한 여야의 구애 작업은 눈물겹다. 지난 대선의 가장 강력한 스윙보터였던 2030의 표심을 잡는 데 사활을 걸었다. 경쟁적으로 청년정책을 쏟아내고, 혹시 마음을 상하게 했으면 납짝 엎드린다. 난데없는 메가시티 계획도 나왔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수도권의 표심을 흔드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효과는 없다. 대통령이 세일즈 외교를 표방하며 세계를 누벼도, 당정이 파격적인 청년정책을 발표해도 지지율은 거기서 거기다. 지지 정당이 바뀌지 않는 적극적인 보수·진보층에 머무른다. 기회 있을 때마다 민생을 외치는 야당도 다르지 않다. 이유는 뻔하다. 구태의연한 3류 정치, 특권만 챙기고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의원들이 버티고 있어서다. 속셈이 뻔히 보이는데 지지할 마음이 생길 리 없다.

총선이 4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경제·민생을 한 손에, 혁신을 다른 손에 들고 유권자에게 호소할 것이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정치인이 외치는 경제·민생은 포퓰리즘과 다를 게 없다. 스윙보터를 움직이는 동력이 될 수 없다. 남는 건 혁신이다. 양당 혁신위원회가 모두 실패한 상황에서 그 혁신은 자연스럽게 물갈이로 향한다.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했던 것처럼 지도부를 포함한 현역의원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키는 게 핵심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 깔끔한 일처리로 물갈이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기성 정치권에 빚진 것도 없으니 분출하는 바닥의 요구를 공천 심사에 마음껏 반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유권자로부터 혁신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국민의힘의 혁신은 윤 대통령의 국정기조가 바뀌는 데서 시작한다.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정당에서 벗어나는 게 혁신의 최종 목표가 돼야 하는데, 한 장관은 바로 그 지점에서 모순에 빠진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혁신의 출발점은 사당화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놓고는 시스템 공천이라며 물갈이를 시도하는 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벌써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됐다. 시간이 많지 않다. 스윙보터의 마음을 얻는 혁신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당내 권력을 공고히 하는 방편으로 사람만 바꾸고는 혁신이라고 우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유권자는 바보가 아니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