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철 칼럼] 한동훈, 윤 대통령에 ‘No’ 할 수 있다면

[노석철 칼럼] 한동훈, 윤 대통령에 ‘No’ 할 수 있다면

입력 2023-12-22 04:20 수정 2023-12-24 15:32

‘R&D 카르텔’ 예산 삭감 등
윤 대통령의 잦은 정책 실수는
누군가 직언하지 못하기 때문

대통령 오판 때 브레이크 역할
총선 승리 위한 한 장관 임무
김건희 특검법 첫 시험대일듯

윤석열 대통령이 줄곧 강조해온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은 양날의 칼이다. 사회 구석구석 곪아있는 이권 카르텔 구조는 손봐야 하지만 선량한 국민까지 잠재적인 범죄자 굴레를 씌울 수 있다. 그래서 카르텔 혁파는 외과수술처럼 환부만 정확하게 도려내야 하고, 카르텔 용어도 남발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R&D 예산=카르텔’이란 프레임은 너무 나갔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말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원점 재검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곧이어 올해보다 16.7% 감소한 정부 R&D 예산안이 짜여졌다. 과학기술계는 미래 대한민국을 포기한 처사라며 분노했다. 과학기술 인재들이 졸지에 부당이득이나 나눠먹는 이권 카르텔이 됐다며 좌절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왜 R&D 카르텔을 거론했는지, R&D 예산을 어떻게 갈라먹었다는 건지 그후 설명이나 조사 결과도 없다. 다만 전 정부 R&D 예산 배분에서 소외된 원로들이 대통령에게 불만을 얘기한 게 발단이라는 추측만 나돌 뿐이다.

반발이 커지자 정부는 각종 지원책으로 달래기에 나섰지만 과학기술계는 카르텔 낙인에 이미 깊은 상처를 입었다. 내년 R&D 예산도 올해보다 4조6000억원 깎이게 됐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태양광 사업과 민주노총 화물연대, 시민단체 보조금, 은행들의 이자 장사 등을 이권 카르텔로 규정해 여론을 환기시켰다. 그러나 각 분야를 카르텔 구조로만 보다 역풍을 맞았다.

지난 6월 윤 대통령의 사교육 카르텔 혁파와 킬러문항 배제 지침도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당시 여권은 윤 대통령이 대입 제도에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라고 주장했고,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대통령에게 배울 정도라고 했다. 이어 사정기관이 수능 출제진과 학원 수사에 들어갔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당시 킬러문항 배제 지침은 수능을 5개월 앞둔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올해 ‘고난도 불수능’으로 킬러문항 배제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결국 대통령의 말 대신 학원에 의지한 학생들이 유리한 ‘불공정 수능’이란 말까지 나왔다. 수능 카르텔로 지목된 학원은 수능 만점자와 전국 수석을 배출하기도 했다. 대통령 지침 탓에 누군가는 불필요한 재수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의 이념 전쟁도 뜨악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공산 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들은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 전날 국민의힘 연찬회에선 “이념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논란도 이념 전쟁의 연장선이었다. 홍 장군의 공산주의 이력이 문제라는데, 나라 잃은 우리 독립투사들은 이념을 떠나 강대국에 의탁해야 했다. 박민식 장관이 ‘위대한 독립 영웅 홍범도 장군’이라고 했듯이 부질없는 이념 공세다. 윤 대통령이 최근 네덜란드에서 헤이그 특사로 언급한 이위종 선생도 공산당원이었다. 이 외에 김기현 당 대표 세우기, 김태우 강서구청장 출마 등도 대통령 의지가 역효과를 낸 사례다.

장황하게 지난 얘기를 하는 건 윤 대통령 주변에 쓴소리꾼이 없어 실책이 잦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통령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일 수는 없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바로 정책으로 실행되는 건 위험하다. 궤도 이탈 시 누군가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한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수락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전 장관은 최근 ‘윤석열 아바타’라는 우려에 “누구도 맹종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도 당선자 시절 “한동훈은 내 얘기도 안 듣는 사람”이라고 했다. 현재 대통령실에는 윤 대통령에게 직언할 사람이 별로 없다는 얘기가 들린다. 특수통 출신인 윤 대통령은 핵심 파악이 빠르고 다방면에 해박해 반박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성급한 확신은 오판 가능성을 키운다. 반대 토론이 어려워서다.

한 전 장관의 목표는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승리다. 그러려면 대통령의 잘못된 국정운영 스타일에 브레이크를 걸고 쓴소리를 자주 내야 한다. 그 첫 시험대는 ‘김건희 특검법’이 될 것 같다. 윤 대통령과 함께 특검법에 반대하자니 ‘아바타’ 이미지가 걱정되고, 찬성하자니 내년 총선 악재라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요즘 윤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의 떡볶이 시식과 해외 술자리, ‘김건희 명품백’ 의혹 등으로 여론이 최악이다. 한 전 장관에게 여당과 대통령을 함께 구해낼 묘안이 있을까.

노석철 논설위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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