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나의 아저씨’에게 쓰는 반성문

[이명희의 인사이트] ‘나의 아저씨’에게 쓰는 반성문

입력 2024-01-02 04:03

삶의 응원가 불러준 배우 죽음
유튜버와 일부 언론의 집단적 광기,
관음증이 빚어낸 비극

새해엔 모두 덜 상처받았으면
가짜·선정적 뉴스 쏟아내는
유튜브 생태계 이제는 손봐야
언론의 책임감 막중해졌다

2024년 새로운 해가 밝았다. 떠들썩한 해돋이나 연말이면 TV 앞으로 나를 당겼던 지상파 각사의 연기대상 시상식도 시들해졌다. 카톡으로 날아드는 새해 인사도 스팸메시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심드렁하다. 답글을 다는 것조차 귀찮아 안 읽은 채 놔두려니 그래도 마음을 다해 보냈을 상대에 대한 미안함에 휴대전화 자판을 두드려 이모티콘으로 답을 한다. 장밋빛 기대보다 올해도 무탈하게 상처를 덜 입고 지나갔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나이 때문도 있지만 지난 연말 선하고 따뜻했던 한 배우의 안타까운 죽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탓이다. 새해 나의 첫 칼럼은 그래서 33년 기자로 반성문을 쓰는 것에서 시작하려 한다.

올가미에 갇힌 듯 옴짝달싹 조여오는 잔인한 사회의 칼날과 인간에 대한 배신감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깊이를 가늠하지도 못하겠다.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마라,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다, 파이팅해라. 그렇게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숨이 쉬어져. ”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배우 이선균씨가 연기한 주인공 박동훈의 명대사들이다. 이런 말들이 힘들고 고통 속에 있는 어떤 이에겐 따뜻한 위로를 주고, 삶의 끈을 놓고 싶을 정도로 좌절하는 이에겐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줬지만 정작 자신은 구원하지 못했다.

누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나. 내사 단계에서 피의사실을 흘리고 두 차례 마약 검사에서 모두 음성판정을 받았는데도 무리하게 유흥업소 실장의 진술에만 의존해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 경찰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이씨는 마약인 줄 몰랐다며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5공 시대도 아니고 첨단 AI시대에도 이런 후진적 수사관행으로 세계적인 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나다니 참담하다.

약점을 잡아 사기 치고 돈을 뜯어낸 유흥업소 실장과 협박범은 인간에 대한 환멸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인간이 이렇게 악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다른 데 있지 않다.

그는 두 아이의 아빠이자 누군가의 남편이다. 배우인 그에게도 소중한 가족이 있다. 연예인도 엄연히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있다. 하지만 돈벌이에 혈안이 된 유튜버들과 일부 언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하이에나처럼 그를 물어뜯고 사생활을 까발렸다. 그를 죽음으로 내몰고도 반성은커녕 장례식장과 발인식에 몰려들고 오래전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에 대한 가짜뉴스를 퍼트리며 ‘집단광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도 아니고 사회정의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조회수를 높여서 돈을 벌려는 목적이다. 옐로 저널리즘을 넘어 가짜뉴스를 무차별적으로 생산하고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쓰레기 유튜브’들을 차제에 손봐야 한다.

집단관음증을 즐기며 그의 죽음을 방조한 사회도 공범이다. 우리는 그동안 숱한 연예인을 잃었다. 삶이 고단하고 지칠 때, 다 포기하고 싶을 때 삶의 응원가를 불러줬지만 정작 자신들은 인터넷 악플과 대중의 날카로운 비수에 스러졌다. 제도적 개선이나 반성은 언제나 뒷북이다. 그것도 잠시뿐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새해에는 모두 상처 입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한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타인에 대해선 지나치게 엄격한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지 않은지 반성한다. 가짜뉴스와 자극적·선정적 뉴스를 쏟아내는 유튜버들이 발을 못 붙이게 하려면 생태계를 정화하는 것은 물론 대중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말초적인 뉴스들을 좇으며 가학적 소비로 우후죽순 유튜버들이 양산되는 토양을 만든 것은 아닌지 자성한다.

“언론이 보여주는 세상은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적 지향에 따라 ‘재구성된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격한 검증을 거쳐도 진실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근원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직업윤리마저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다. 언론은 이러한 두려움과 위험성을 깊이 인식하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주어진 일을 감당해야 한다.” 지난해 크리스천리더스포럼에서 강연한 MBC 기자 출신의 이인용 삼성전자 고문의 일침이다.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