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나침반이 된 성경말씀] 말씀의 깊은 울림, 캔버스에 담아 함께 나누다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된 성경말씀] 말씀의 깊은 울림, 캔버스에 담아 함께 나누다

<107> 신미선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장

입력 2024-01-0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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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젊은 날 자유롭고 멋진 예술가의 삶이 내 앞에 펼쳐질 것을 자신했다. 스스로 재능이 많다고 생각한 나는 세상에 무서운 게 없었다. 교회와 대학 생활을 즐겁게 보내고 졸업 후 전도사였던 남편의 프러포즈를 받았다. 온유한 인품과 하나님 제일주의, 따뜻한 가정에 대한 소신을 접하며 ‘이 사람이 가려 하는 길을 따라가면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친정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고난 많은 목회자의 사역을 네 성격으로 감당하지 못할 거다. 내가 안다”는 말씀이 날아왔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승낙이 떨어진 그 날은 권사님이신 시어머님과 남편이 40일 아침 금식기도를 마치는 날이었다.

결혼 후 매일 저녁 드리는 가정예배가 좋았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다고 주변에서는 칭찬을 했는데, 오히려 나를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시부모님 덕을 보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아이 둘이 커가면서 점차 주위 친구들과의 경제적 격차를 절감하며 현실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는 다른 수준을 누리는 친구들의 일상을 보며 상한 마음을 안고 기도 속에서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남편은 신학대 강의를 이어가며 2006년 교회를 개척했다.

내게 목회 현장은 만만치 않았다. 전쟁터 야전 캠프 같았다. 어느 날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골목길에서 남편에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여보, 하나님은 왜 내 기도를 안 들어주셔?” 내심 하나님께 원망한 것이었다. 돌아온 남편 대답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더하시리라”였다. 순간 남편에게 확 짜증을 내고 말았다. 하나님 나라와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얻어질 떡에만 관심이 있었던 초라한 내 믿음의 현주소를 직면했다.

개척 후 설교 준비에 몰입하는 남편을 지켜보며 그 귀한 말씀을 한 톨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중했다. 말씀의 깊은 울림의 지점에서 시각적으로 떠오르는 영감을 노트에 기록하며 캔버스에 옮겼다. 그 작품이 전시됐을 때 나 역시 관람자로서 다시 작품을 보며 말씀의 의미를 떠올리게 되고 다른 사람과 하나님 이야기를 하게 됐다. ‘미술로 신앙하기’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작품을 보라’가 아니라 ‘함께 하나님을 묵상할까요’가 되는 것이다.

모교인 이화여대가 역사를 지닌 미션스쿨임에도 기독미술인회가 없다는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사람을 모았다. 그 결과 2015년 이화기독미술인회를 조직해 매년 성경 말씀 묵상으로 빚어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떠올리며 결과보다 과정의 기쁨을 누리고자 했다. 하나님의 퍼즐 조각이 되어 얼룩진 세상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약력> △현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회장 △이화기독미술인회 회장 △로고스 갤러리 대표 △성남미술협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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