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수] 성경 보며 종일 원고와 씨름… 몸은 쇠약해도 영혼은 더 강해져

[나와 예수] 성경 보며 종일 원고와 씨름… 몸은 쇠약해도 영혼은 더 강해져

희소 난치병에도 저술 작업에 몰두
이영제 주앙교회 목사

입력 2024-01-0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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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컴퓨터선교회(KCM)를 이끌고 있는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가 경기도 군포 교회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해부터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는 이 목사는 “성경 속에 생명이 있고 말씀 속에 우리의 갈 길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포=신석현 포토그래퍼

한국컴퓨터선교회(KCM)를 이끄는 이영제(63·주앙교회) 목사는 1년 전부터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희소 난치병인 척수소뇌성 운동실조증으로 인해 걸을 수가 없고 말도 어눌해졌다.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아니면 불편해서 전화통화도 하지 않고 문자로 소통도 하지 않는다. 이 목사는 "10년 전 몸에 이상을 느껴 유전자 검사를 했는데 선천적으로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건강 관리만 잘했다면 증상 발현을 최대한 늦출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목사는 방대한 양의 성경 안내서 ‘바이블 웨이’를 완성하고 바로 뒤이어 ‘가족 성경’과 ‘지저스 웨이’를 펴냈다. 종일 원고 작성에 매달렸고 직접 편집까지 했다. 책이 출간되면 하루 12시간씩 2박 3일간 진행되는 세미나를 연이어 가졌다. 그 사이 몸은 급속도로 망가졌다. 심장에 이상이 생겨 스텐트 시술까지 했다. 이 목사는 “5년 전부터 균형 감각에 이상이 생겨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걷기 시작하더니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걸을 수 없게 됐고, 마침내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02년 중국 지린성에서 현지 목회자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가진 후 차영숙 사모와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처음엔 하나님께 원망도 했다. 이내 “이놈아 유전자 하나 잘못됐다고 그렇게 난리냐”는 하나님의 꾸짖음에 “열심히 살겠다”고 소리치며 정신을 차렸다. 이 목사는 “어려서 증상이 안 나타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들어 몸이 쇠약해질수록 영혼은 더 강해진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장애를 갖다 보니 항상 뒤처질 수밖에 없는데 그러고 나니 앞에 있는 사람이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목사의 인생은 ‘파란만장’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작됐다.

2005년 베트남에서 열린 인도차이나 선교대회에 참석한 이 목사.

무당집에서 자랐다

1961년 장애가 있는 아버지가 장을 떠돌며 생계를 잇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경기도 마석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갓 돌이 지날 무렵 부모님은 아들을 무당집으로 보냈다. 조금이나마 먹고살 걱정 없는 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잘 살지 못했다. 무당 할머니는 네 살 무렵 자주 팔이 부러지던 이 목사를 방치하다 급기야 큰길에 내다 버렸다. 밤새 길을 따라 걷다 쓰러져 깨어보니 어머니 품이었다. 이 목사는 “그때부터 다시 집에서 자랐는데 늘 팔이 잘 부러졌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운동신경을 좌우하는 소뇌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불이 난 적이 있다. 경황이 없던 어머니는 집 안에 이 목사를 두고 나왔다. 아버지가 ‘애는’이라고 물어봤을 때야 아들을 두고 나왔다는 것을 인식했다. 아버지는 불 속에 뛰어들어 이 목사를 안고 나왔다. 이 목사는 그때부터 ‘불 트라우마’가 생겼다. 굴뚝에 연기만 나도 불났다고 난리를 폈다. 지금도 사무실이든 집이든 소화기가 안 보이면 불안하다고 한다. 제일 못 부르는 찬양도 ‘불 속에라도 들어가서’다.

처음 교회라는 곳에 갔던 것도 불과 연관이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전도를 나온 한 아주머니가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가요. 거기는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어요”라고 했을 때, 이 목사는 불이라는 말에 군소리 없이 교회에 가기도 했다.

교회 가니 쌀이 생겼다

이 목사는 어려서 돈벌이를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생계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는 새벽에 신문을 돌렸다. 마을 교회의 새벽 종소리를 알람 삼아 눈을 떴다. 대학생들이 많이 놀러 오는 천마산에 올라가 아이스크림도 팔았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는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새마을 공장에서 실습생으로 일했다. 서울로 올라와 봉제 공장에서 일할 때는 5개월간 월급을 받지 못하다 겨우 받은 두 달 치 월급을 도둑맞기도 했다.

지칠 대로 지쳐 집으로 돌아온 이 목사는 부모님에게 공부를 다시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동안 모아 둔 돈으로 서울 종로의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매일 마석과 서울을 오가는 기차에서 자주 만나 친하게 지내던 한 누나의 전도로 ‘정식’으로 마석의 화도교회에 나갔다.

처음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마당에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 성도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 목사는 새벽예배까지 모두 참석하며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다. 이 목사는 “당시 어머니가 ‘교회 다니면 쌀이 나오냐’고 못마땅해 하셨는데 담임 목사님이 주신 성미를 어머니에게 전해주며 ‘엄마, 교회 다니니까 쌀이 나오네요’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부활이 안 믿어졌다

청년 이영제에게 큰 신앙적 고민이 있었다. 이 목사는 “몇 년을 교회에 다니며 찬송하고 기도하고 다 하는 데도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지 않았다”면서 “부활을 의심했던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이해가 됐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또 “부차적이긴 하지만 당시 성령을 받은 증거가 방언이라고 강조되던 시기였다”면서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방언을 받지 못했었다”고 회상했다.

이 목사는 한 기도원에 올라가 10일 동안 금식하며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도원에서 내려와 경춘선 철길 위에 몸을 누인 이 목사는 목숨을 스스로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영락없는 광인(狂人)의 모습으로 새벽녘 교회를 찾은 이 목사는 교회 청년들에게 이끌려 청량리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몇 주 후 정신병원을 나온 이 목사는 화도교회 사모님의 안내로 강원도 철원의 대한수도원으로 향했다. 당시 목회자 집회가 열리고 있었지만 ‘아픈 사람’이라는 핑계로 평신도였던 이 목사도 참석이 허락됐다. 이 목사는 “당시 집회는 통회와 간구 그 자체였다. 그 한 가운데에서 울부짖으며 기도하면서 바울이 다메섹으로 올라가는 길에 만났다는 ‘그분’을 만났다”면서 “잠깐 울면서 기도한 것 같은데 3일이 지났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밤낮으로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한 달가량 수도원에서 지냈다.

성령 체험 후 새롭게 태어났다

성령 체험 후 이 목사는 새롭게 태어났다. 서울에서 부흥회가 열리는 교회마다 찾아다녔다. 당시 유명하다는 부흥 강사들의 설교를 거의 외울 정도였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다니며 주요 역에서 노방전도도 했다. 성경을 더 깊이 알고 싶어 막 출간됐던 ‘풀핏 성경 주석’을 사서 읽었다. 그리고 신학교에 입학한 이 목사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성경을 다 깨닫자’는 표어 아래 새벽에 2시간씩 매일 성경 공부에 매진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도 익혔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군 제대 후에는 삼각산에서 움막 생활을 하며 새벽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신구약 성경을 30번가량 읽기도 했다. 이 목사는 “성경 말씀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 말씀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았다”고 했다.

컴퓨터 선교에 나섰다

1995년 이 목사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인터넷 홈페이지 교육을 하고 있는 모습.

이 목사는 여러 교회의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성경을 꾸준히 공부하면서 깨달았던 것은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은 “누가 너보고 선교사 하래? 머리를 써 머리를”이라고 호통치셨다. 곰곰이 ‘머리를 써서’ 생각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는 것이 뭘까.’ 이 목사는 컴퓨터를 떠올렸다. 잔심부름으로 처음 일을 시작한 한성전자라는 곳에서 어깨너머로 전기 전자의 기초를 배웠고, 우연히 배우기 시작한 컴퓨터를 파고들어 소프트웨어도 만들 수 있었다. 이 목사는 “언젠가 성경이 전파나 통신을 타고 전해질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컴퓨터는 나의 시간적 공간적 물질적 제한을 극복하게 해 준다는 것이 가장 장점”이라고 말했다.

87년 한국기독교컴퓨터선교회(현 한국컴퓨터선교회)를 창립한 뒤 밤을 새워 성경과 기독교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나섰다. PC통신 천리안과 하이텔 등에서 기독교 동호회를 만들어 활발하게 활동했다. 또 세계선교정보연구원 등을 운영하며 선교 현장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 가공, 선교사와 평신도 및 예비선교사들에게 공급해왔다.

성경 속에 생명이 있다

10여년 전부터 이 목사는 저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 목사는 “목회자를 비롯해 다양한 사역자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하면 2% 부족했던 궁금증이 풀렸다고 하면서 다시 한번 사역자로서 힘을 얻고 간다고 말할 때 큰 기쁨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누구든 편하게 와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가족 성경 통독 카페’가 선교회 이름으로 9호점까지 생겼다. 이 목사는 “성경 속에 생명이 있고 말씀 속에 우리의 갈 길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면서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권사님, 장애우 등 성경을 열심히 읽은 분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군포=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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