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주홍글씨 새기기보다 사랑으로 품자

[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주홍글씨 새기기보다 사랑으로 품자

경계선에 선 사람들

입력 2024-01-0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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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미국 뉴잉글랜드 보스턴 지역에 사는 여인 헤스터의 가슴에는 간통을 의미하는 주홍 글자 ‘A’가 새겨져 있다. 사생아인 딸 펄을 낳았기 때문이다. 헤스터는 펄을 안고 감옥 앞 광장에서 보스턴 주민의 모욕과 조롱을 견디며 처형대에 서 있는 형벌도 받는다. 사회의 낙인으로 헤스터는 딸과 함께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서 생활한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남편 칠링워스의 생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사생아를 낳은 것이라지만 헤스터는 사람들의 배척을 피하지 못한다.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의 대표작 ‘주홍 글씨(The Scarlet Letter)’(1850) 속 이야기다. 미국 문학의 걸작이자 기독교 고전인 이 책은 당대 미국의 청교도적 가치관과 죄, 인간의 위선에 대한 통찰력을 담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한국교회에도 헤스터와 같이 사회로부터, 교회로부터 낙인찍히거나 고립된 이들이 있다. 이단 탈퇴자, 동성애자, 가정이 깨어진 이혼 및 미혼모 가정, 외국인 근로자, 탈북자, 장애인 등이다. 이들은 교회 안에 속하지도, 교회를 떠나지도 못하고 주변을 서성거리며 마치 경계선에 걸친 이들과 같다.

지난 한 해 동안 한국교회 변방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 같이 교회 내 공동체로 들어가는 일을 주저했고, 대놓고 배척하지는 않아도 자신들을 경계하는 시선과 편견들로 보이지 않는 벽과 마주했다고 고백했다. 물론 이들을 환대하며 이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특수사역을 펼치는 교회와 교인도 많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처럼 일반 교인과 그들 사이에는 미묘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듯하다. 그런 특수사역이 소위 ‘달란트’가 있는 이들의 몫이라며 떠넘기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경계선 바깥에 있는 이들 일부는 물론 성경이 말하는 죄와도 연관이 있다. 동성애나 이혼, 미혼모 등이다. 하지만 이 역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성경의 대전제를 앞설 수 없다. 어떤 죄를 지었는지보다 중요한 건 그 죄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회개하며 풀어나가냐다.

앞선 소설 속 헤스터 역시 처벌 이후 몸가짐을 조심히 하며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이에 그녀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평판도 점차 개선됐다. 또 그녀의 가슴에 단 주홍빛 글자 ‘A’의 의미에 대한 해석 또한 ‘angel(천사)’ 등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나중에 펄의 아버지로 밝혀진 청교도 목사 아서 딤스데일도 헤스터와 펄의 손을 잡고 단죄대 위로 올라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쓰러져 죽음을 맞이한다.

지난달 중순 전북 익산의 한 목회자 가정이 생활고 등으로 스스로 생명을 저버리는 일이 있었다. 자살과 자녀 살해에 관한 논쟁 이전에, 목회자조차 고난 앞에 의지할 곳을 찾지 못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단에서 탈퇴해 현재 국악 찬양가로 활동하는 한 청년이 한국교회에 부탁한 진심 어린 말이 기억난다.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이 지금까지 주고받았던 상처를 다 터놓고 대화로 풀어나가지 않고 외면하면 탈퇴자는 또 고립됩니다. 한국교회가 이단 탈퇴자에 대한 낙인과 정죄의 시선을 거두고 진심과 사랑으로 품어주길 바랍니다.”

프랑스어에는 ‘톨레랑스(tolerance)’라는 말이 있다. 관용으로 번역되는 이 말은 좁은 뜻으로는 남의 잘못이나 허물을 너그러이 용서하고 상대를 품어주는 것을 뜻한다. 2024년의 해가 밝았다. 타인을 정죄하기보다는 나부터 먼저 돌아보고 그런 다음 누군가 죄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나와 다른 이를 배척하기보다는 이해하고 품어주려는 이 톨레랑스의 자세가 더 필요하다. 올 한 해 한국교회에 나그네 같은 이들을 품는 성경 속 일이, 주홍글씨를 새기는 일이 아닌 톨레랑스 정신이 더 퍼져나가길 기도한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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