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얼라이브] 여섯 번째 교회 개척… 구순 문턱에도 멈추지 않는다

[미션 얼라이브] 여섯 번째 교회 개척… 구순 문턱에도 멈추지 않는다

경북 안동 풍산동신교회 김쌍금 전도사

입력 2024-01-1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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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쌍금 전도사가 지난 7일 주일 오후 예배가 끝난 뒤 경북 안동 풍산동신교회 앞에서 여섯 번째 개척에 관한 비전을 밝히고 있다.

창세기 기자는 “사래(사라)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창 11:30)고 밝힌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순한 저주에 머물지 않고 창조적 능력으로 임신하는 과정을 기적같이 보여준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될 때 사라는 아이를 낳고 이름을 웃음, 즉 이삭이라 불렀다. 하나님은 사라의 잉태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으로 드러내신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아내 라헬을 불쌍히 여겨 태의 문을 여신다. 그의 첫아들이 바로 창세기의 마지막 족장 요셉이다. 삼손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태어난 사사이다. 성경에서 불임하면 떠오르는 두 번째 유명한 사람이 바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이다. 한나는 레위지파 엘가나의 아내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이를 낳은 한나는 오직 말씀만이 참 생명임을 삶으로 증언한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엘리사벳의 임신(세례요한)은 사라의 임신과 적지 않게 닮았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 이 말씀을 붙잡고 구순 문턱을 바라보면서 한평생 말씀을 전하고 전도에 올인하는 시골교회 전도사의 삶과 신앙 이야기가 한겨울 추위를 녹이고 있다. 경북 안동 풍산읍 풍산동신교회 김쌍금 전도사 간증이다. 김 전도사는 2022년 12월 6일 영양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경안노회 100주년 기념 노회에서 공로패를 받았다. 의성 신흥교회, 안동 풍산동신교회, 캄보디아 소망교회와 은혜교회, 교도소교회 등 5개 교회를 개척한 김 전도사의 공로에 대한 답례였다.

김 전도사는 갑진년 새해를 맞아 또다시 부푼 꿈을 꾸고 있다. 경북 도청 인근 교회가 없는 마을인 지보면 도장리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지난 7일 주일 오후 예배가 끝난 오후 3시 풍산동신교회를 찾았다. 청갈색 톤 스퀘어 재킷과 하얀 목도리가 잘 어울리는 김 전도사의 두 손을 잡는 순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전도사는 1937년 10월 20일 대구에서 불교 집안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7살 때 친구 따라 서현교회 부흥회에 참석해 은혜를 받은 날부터 지금까지 70여년간 십자가를 가슴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다고 했다. 집안의 박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대문을 잠가 놓으면 담을 넘어 교회로 갔다. 매를 맞으면서도 미친 듯이 예배당을 찾았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출가를 시키겠다고 약혼 날짜까지 잡았지만, 불신자에게 시집을 갈 수 없다는 생각이었기에 목회자 사택에 몇 주간 숨어 지내면서 파혼을 자초하기도 했다.

‘믿는 사람에게 시집가겠다’는 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김 전도사의 부친은 어느 날 한 친척의 중매로 옆 동네 사는 총각 집사를 사윗감으로 선택했다. 믿음이 좋다는 말만 듣고 선도 보지도 않고 혼례를 치른 것이 화근이었다.

“남편은 3형제 중 둘째로 의성공고 전교 회장을 할 정도로 똑똑한 편이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6·25전쟁 중 공산당을 찬양하는 선전물을 붙였다는 억울한 혐의를 받고 경찰서에 잡혀가 주리틀기 고문을 당해 성불구자 신세가 됐다는 것을 시집온 뒤 한참 뒤에 알았어요.”

2014년 김 전도사(맨 오른쪽)의 생일날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 청라사랑의교회 제공

김 전도사는 마치 소설 속 얘기를 하듯 4년 전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 이재훈 장로가 겪은 얘기를 들려줬다. 이 장로는 당시 전쟁 중이었으므로 제대로 치료를 받지를 못했고 이후에도 장애를 앓고 맘씨 좋은 춘산교회 집사로 살았다고 했다. “결혼한 지 3개월이 지나자 시어머니는 제가 임신을 못 하는 줄 알고 아들을 다른 여자에게 장가를 보내겠다고 야단을 치기도 했어요. 그런데 신랑과 함께 병원에 가서 검사했더니 신랑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어요.”

김 전도사는 매일매일 새벽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아들 하나 사무엘 같이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이었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임신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아들이기를 바랐으나 딸이 태어난 것이지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김 전도사는 아들이 아니었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곳으로 시집오게 하신 이유와 계획이 있지 않겠냐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교회 일과 동네의 계몽 운동을 시작했다. 1958년부터 60년대까지 의성 춘산면도 여느 촌 동네와 마찬가지로 가난과 밀수, 도박으로 얼룩진 피폐한 농촌이었다고 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슬로건을 걸고 옥정 새마을금고를 설립하고 이사장직을 맡아 저축 운동을 독려했다. 춘산중학교 어머니회장을 맡아 학생들에게 봉사하기 시작했고 새마을 지도자, 춘산면 청소년 선도 위원, 경북 저축 추진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 전도사는 새마을 운동과 이웃돕기 봉사활동의 공로가 인정돼 정부로부터 새마을운동 노력장 훈장과 내무장관상 도지사상 군수상 등 20여개의 상을 받았다.

“세상 그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어요. 춘산교회에서 전도하고 봉사를 했더니 전도사로 임명해 주었어요. 40세부터 20년간 무보수로 전도사 사역을 했는데 잘 알고 지내던 최진호 목사님이 안동시 풍산읍 만운서부교회에 교역자가 없는데 혹시 가겠냐고 해서 만운서부교회로 옮긴 것이 교회 개척의 계기가 됐어요.”

당시 목회자 없이 여 집사 두 명만 출석하던 서부교회를 성장시킨 김 전도사는 풍산읍 매곡리에 교회가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다가 교회 부지를 매입하고 예배당을 건립해 60여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이어 목회자를 초빙해 교회를 맡기고 고향인 춘산면 신흥리에 교회당을 건축해 40여명이 모이는 교회로 만들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니 풍산동신교회 목사님이 갑작스럽게 떠나면서 성도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신흥교회에 목사님을 모시게 해놓고 다시 안동의 풍산동신교회로 와서 지금까지 시무하고 있습니다.”

김 전도사는 또 해외에도 눈을 돌려 캄보디아 소망교회와 은혜교회, 교도소교회를 건축했다. “한 영혼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말 있지요. 대도시는 성도들이 넘쳐나니 모르겠지만 시골 교회는 달라요.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를 위한 예배당은 필수적이니까요.” 평생 교회 없는 시골 마을에 예배당 짓는 일을 해온 김 전도사에게 왜 젊은이도 없고 노인밖에 없는 시골에 예배당 짓는 일에 그렇게 매달리고 있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김 전도사는 믿음이 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십자가 목걸이라도 걸고 다니면 악령(귀신)을 멀리하거나 쫓아낼 수 있다고 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을 매우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전도사는 이어 교회는 영적 전투장이기 때문에 부흥하게 되면 반드시 성도들끼리 이간질하거나 온갖 갈등으로 분열의 위기를 겪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목회자와 장로, 집사 등 성도들의 기도가 끊어지면 안 된다고 했다.

김 전도사는 아직도 억척이다. 혼자 살면서 김장김치를 50포기나 담갔다고 했다. 수시로 떡을 해 공공기관에 돌리고 국화꽃을 가꿔 병원과 약국에 나눠준다. 귤과 과일을 사다 경로당에 돌리고 아이들에겐 좋아하는 것이라면 뭐든 준비해 선물을 안겨준다. 구순을 앞둔 나이지만 김 전도사는 새해 들어 가물가물했던 시력도 다시 좋아졌다고 했다. 육식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먹는 일이 드물고 김치와 나물, 된장찌개를 최고의 음식이라고 했다. 새해 덕담으로 김 전도사는 ‘보생와사’(步生臥死)라는 사자성어를 들어 건강 비결을 소개했다. 적게 먹고 많이 걷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 11:24) 김 전도사는 하루 예닐곱 시간을 기도한다. 오전 3시면 일어나 새벽기도를 하고 아침 식사 후 전도를 나가고 오후 6시부터 9시30분까지 예배당에서 다시 기도한다. 새해 기도 제목은 크게 두 가지다. 생애 마지막일 수 있는 도장리교회를 짓는 일을 무사히 마치고 목회자를 청빙하는 것과 무남독녀 이경희(64) 사모와 사위 목사의 가슴에 박힌 못을 빼달라는 것이다.

김 전도사의 사위는 인천 청라사랑의교회 담임 박용배(66) 목사다. 박 목사는 ‘북한 동포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가장 큰 사명으로 삼고 건강한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 제10회 글로벌 자랑스러운 세계인 대상의 종교인상을 받은 박 목사는 1958년 경북 의성 산골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온갖 역경을 견디고 목회자로 거듭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그는 30년간 현장에서 전도하면서 승려 3명과 무속인 15명, 그리고 수많은 언론인과 법조인, 공무원, 기업가, 연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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