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앞집 할머니의 화단

[살며 사랑하며] 앞집 할머니의 화단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입력 2024-01-12 04:01

창가에서 내려다보면 앞집 마당이 보인다. 붉은 벽돌로 둘레를 쌓고 고무 화분에 대파 따위를 심은 투박한 화단. 꽃이 필 때도 있고 채소가 자랄 때도 있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화단 겸 채소밭인 셈이다. 할머니가 화단을 가꾸는 법은 얼마간 무심해 보였다. 공들여 가꾼 티가 나지 않았는데도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봄에는 상추와 방울토마토가, 여름에는 봉선화와 고추 모종이, 가을에는 소국이 피었다.

할머니는 시든 소국 화분을 겨우내 그대로 두었다. 파도 제멋대로 자랐다. 기세 좋게 뾰족하게 올라온 싹 옆에 누릿한 잎이 늘어졌다. 하지만 그 집 마당의 동백나무만은 눈길을 끌었다. 매해 붉은 종 같은 꽃송이를 소담스레 달았다. 가지를 흔들면 맑은 종소리가 울릴 듯했다. 특히 함박눈이 온 날에는 잘게 솜을 찢어 꽃송이마다 얹은 듯 눈이 쌓였다.

위를 향해 핀 꽃잎과 노란 꽃밥. 수많은 문사가 노래했듯이 동백은 질 때도 더는 미련 없다는 듯 통째로 떨어진다. 마치 “이번 생에서 후련하게 화려했으니, 이제 다 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또한, 꽃 진 자리에 아직도 싱싱한 붉음을 보노라면 어떤 결기마저 느껴진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드러내는 선연한 의지 같은 것 말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들다 보니, 남의 집 마당을 내려다보는 게 미안하다. 건물끼리 바투 지은 탓이다. 그러나 저 선명한 동백에 저절로 눈길이 가는 걸 어쩌랴.

시드는 생명과 활짝 피는 생명이 한데 어우러진 할머니의 화단이 좋다. 저마다 다른 식물의 고유함을 존중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다분히 사람의 관점에서나 식용과 관상을 구분하지만, 경계 없이 어울려 생멸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지당한 일일 테다. 할머니의 화단에는 순리대로 피고 지는 식물이 적당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창밖을 보니 제법 굵었던 눈송이가 진눈깨비가 되어 흩날린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