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목사의 우보천리] 우보천리, 마보십리

[이상학 목사의 우보천리] 우보천리, 마보십리

입력 2024-01-1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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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우보천리(牛步千里), 마보십리(馬步十里)라는 말이 있다. 소걸음은 천 리를 가는 데 반해 말걸음은 십 리를 간다는 뜻이다. 소걸음은 느리지만 꾸준히 걸어 천 리를 가고 말은 뛰어 속히 가는 것 같지만 멀리 못 가서 지쳐버린다는 의미다. 농경시대의 언어지만 오늘 같은 최첨단 시대에도 곱씹어볼 뜻이라 여겨진다.

우리는 뭐든지 서둘러서 원하는 때에 열매를 손에 거머쥐길 바란다. 문명의 흐름이 그렇다. 그래서 마부가 자신이 탄 말을 채찍질하듯이 자기의 인생을 채찍질하고 다그친다. 이 과정에서 급하게 달리느라 그는 아름다운 인생의 순간을 음미하고 향유하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러다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쉽게 낙심하고 좌절하며 포기하기까지 한다. 현대인들 대부분은 이처럼 마보십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마보십리 현상은 신앙인의 삶에서도 드러난다. 한국교회 성도들만큼 열심인 성도들이 없다. 이전보다는 기도의 열기가 식었다고 해도 여전히 한국교회 성도들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말씀 보고 열심히 봉사한다. 열정에서는 단연 으뜸이다.

오죽하면 ‘코리안 스타일 프레이’(Korean style pray)란 말이 미국에서 돌겠는가. 그런데 쏟아낸 열정이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받지 못하면 그때부터 성도들의 페이스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낙심하고 좌절하다가 마침내 시험에 들어 신앙을 놓아버리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마보십리의 신앙이다. 말처럼 기민하기는 하지만 소와 같은 뚝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우보천리의 삶을 추구한다. 크게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첫째, 그들은 우직하고 뚝심 있게 자신에게 맡겨진 걸음을 걸어간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걸음을 기뻐하신다”고 했다(시 37:23). 결실의 때는 하나님의 소관임을 믿고 자신은 그저 묵묵히 뚝심 있게 가야 할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이다. 바로 우보, 즉 소의 걸음이다. 느리지만 꾸준하며 더디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이 걸음이 결국 신앙의 천 리를 걸어가게 만든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부르심의 길을 간다. 소의 특징이 바로 충직하고 일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의 걸음은 다른 걸음을 흉내 내지 않는다. 말걸음이 빠르고 화려해 보인다고 해서 이를 모방하지 않는다. 시기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가 처음부터 걸어온 그대로 계속해서 자기 걸음을 유지하며 걸어간다. 그래서 소의 걸음은 처음과 중간과 끝이 같다. 히브리어로 진리를 ‘아메트’라고 한다. 아·메·트는 각각 히브리어의 첫 글자, 중간글자, 마지막 글자다.

히브리 사상에서는 처음과 중간과 끝이 같은 것이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시다. 곧 예수그리스도가 진리라는 뜻이다. 처음 걸음과 중간 걸음과 마지막 걸음이 동일한 소의 걸음, 이것이 곧 진리의 걸음이다.

처음에 바른 걸음으로 시작했으나 그 길이 험하다 하여 중간에 그 걸음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처음에 부르심의 걸음이라고 나팔 불며 시작했다가 중간에 인기와 명예가 따라주지 않으니 다른 나팔을 불며 걷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소의 걸음은 그렇지 않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남들이 시선을 주든지 말든지 소는 처음과 중간과 끝을 동일하게 걸어간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보실 때 그것으로 충분하다.

흔들리고 요동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화려한 것을 추구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 사활을 건다. 그러나 이러할 때 누군가는 우보천리의 걸음을 걷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소처럼 우직하고 꿋꿋하게 자신을 향한 부르심의 길을 끝까지 변함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단 1㎝라도 확장돼가는 것이다.(새문안교회)

약력=미국 에모리 신학대학원 조직신학(Th. M.),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 조직신학 철학(Ph. D.),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과 겸임교수, 교회교육현장연구소 이사장, 새문안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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