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칼럼]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나

[이동훈 칼럼]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나

입력 2024-01-17 04:20

부동산PF 발 건설사 부실은 2011년 저축은행사태 판박이
정부는 근본 원인 알면서도 워크아웃 등 설거지에만 몰두
1·10 주택대책은 건설사의 부실 땜질용 폭탄 돌리기 의혹

4년 전 이맘때 TV 드라마 ‘스토브 리그’가 오프 시즌으로 한가한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스카우트 비리, 귀화 선수의 병역 논란, 고교 선수 구타 등 야구계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본 드라마는 픽션이며 특정 인물이나 사건, 구단, 단체 및 조직, 배경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라는 문구가 더 비현실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드라마에서 압권은 만년 꼴찌팀 드림즈에 단장으로 부임한 백승수(남궁민)가 야구계 아킬레스건인 스카우트 비리 척결을 다짐하는 장면이다.

“그래서 지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라구요?” “네 고쳐야죠. 소 한번 잃었는데 왜 안 고칩니까. 그거 안 고치는 놈은 다시는 소 못 키웁니다. 야구하는 동생한테도 물려줄 겁니까? ”

백승수가 신인 드래프트 과정에서 스카우트 팀장에게 뒷돈을 건넨 이창권 선수에게 비리 폭로 동참을 설득하는 이 대화는 불후의 명대사로 회자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뒤늦게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부질없다는 소극적인 의미였지만, 외양간을 고쳐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적극적 의미로 재해석해 낸 것이다. 시청률이 20%에 근접할 정도로 인기를 끈 것도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적폐 청산의 통쾌함과는 정반대의 실제 세계에 돌아와 무기력을 느끼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와 마주쳤기 때문이리라.

희망찬 연초에 국민들을 이 같은 현타의 늪에 빠져들게 한 것 중 하나는 금융시장 뇌관으로 떠 오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아닐까 싶다. PF는 본래 금융기관이 개발계획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해 프로젝트의 미래 사업성을 따져 자금을 대는 금융기법이다. 사업자는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이익으로 돈을 갚아 나가는 구조로 사업에 실패해도 차입금 상환 부담이 없다. 이에 비해 한국의 부동산 PF는 기형적이다. 금융기관들이 리스크 헤지가 돼 있지 않은 자산에 ‘무대뽀’로 대출한 뒤 채무 보증을 강요해 시공사(건설사)에 책임을 전가하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자기자본의 수십 배에 달하는 채무를 아파트 오피스텔 등의 분양금으로 갚아야 한다. 빚으로 빚을 갚는 셈이다. 부동산 호황기엔 고수익을 내는 ‘하이 리턴’ 사업이 부동산 침체로 분양에 실패할 경우 하루아침에 쪽박을 차는 ‘울트라 슈퍼 하이 리스크’ 사업으로 전락한다.

최근 부도 위기까지 몰렸던 태영건설에 대해 워크아웃이 결정돼 일단 한숨을 돌리긴 했다. 그러나 건설사 부도 리스크 원인인 200조원가량의 잠재 부동산 PF 부실은 해소될 기미가 없다. 정부는 지난해 7월 1조원 규모의 정상화 지원 펀드를 만들어 80여개 부실 사업장 매각에 나섰으나 지금까지 1곳도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부실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으로 옮아가는 건 시간문제다. 놀랍게도 이런 모습들은 아직까지도 30여곳의 파산 절차가 진행 중인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도 목격했던 장면이다.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건전성 강화 대책에만 신경을 쓴 탓에 부동산PF 시스템 개혁엔 손을 놓은 것이다. 탐욕은 쓰라린 기억은 잊게라도 하는 듯 부동산 시장 호황기의 고수익이라는 달콤함에 빠져들다 13년 만에 리스크가 재발하자 부실 설거지로 허둥대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근본 원인은 인정하는 눈치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 보고 때 국민의힘 류성걸 의원이 “우리나라에서 PF의 의미가 변형돼 순수한 미래 창출과 관련되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맞다. 근본적인 문제”라고 답한 데서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태영은 경영에 있어 잘못된 측면이 있었고 위험이 더 컸던 게 있다”며 태영건설 경영진을 몰아붙이는 모양새를 취한 걸 보면 워크아웃을 통해 부채를 탕감하는 선에서 끝낼 듯한 분위기다. 혹시나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외양간 고칠 생각은 없어 보이는 것이다. 대신 총선을 앞두고 민생 대책 명분을 내세워 ‘1·10 주택 대책’이란 기댈 언덕을 구축하고 나섰다. 재건축 대상이 100만 가구 이상이나 되는 걸 보면 발등의 불인 부동산 PF 부실 땜질용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가계빚 폭증의 원흉인 ‘미친 집값’ 버블을 빼야 할 시기에 오히려 국민들에게 ‘영끌’을 부추겨 건설사 살리기에 나서려는 것 아닌가. 이렇게 폭탄 돌리는 재미에 빠져들다 그나마 키우던 소까지 잃을까 염려된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