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교회들 ‘사랑의 밥心’ 온기를 잇다

작은 교회들 ‘사랑의 밥心’ 온기를 잇다

고물가·재정 어려움 속에도
이웃 위한 무료급식 봉사하는 교회들

입력 2024-01-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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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신민식

대한민국 사람에게 밥은 ‘쌀을 익힌 음식’의 차원을 넘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왠지 모르게 온기가 느껴지는 ‘집밥’, ‘밥심(力)으로 산다’ ‘밥이 보약’ 등과 같은 관용구가 사회문화적으로 통용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부쩍 팍팍해진 우리 사회는 ‘밥 먹듯 하다’가 지닌 뜻과 대비되는 단상을 만들었다. 밥 굶기를 밥 먹듯 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사이 그들의 끼니를 챙겨주던 무료급식소마저 줄었다. 보건복지부 집계로 드러난 숫자로만 2022년 한 해 동안 255개의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았다. 내려올 줄 모르는 물가, 후원금 감소 등이 복합적 원인으로 꼽힌다. 교회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라고 경제적 위기가 피해가진 않는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도 사랑을 담아 생명을 짓는 밥심(心)은 묵묵히 이웃을 보듬고 있다.

‘더운밥’ 챙기고픈 어르신들을 만나다

매주 목요일 오전 경기도 용인 신갈동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진행되는 무료 도시락 나눔 현장에서 어르신들이 줄을 맞춰 도시락을 받아가는 모습.

지난 11일 경기도 용인 신갈동 행정복지센터 앞엔 오전 이른 시간부터 기다란 인간 띠가 만들어졌다.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30분에 이곳에서 나눠주는 무료도시락을 받기 위한 대기 줄이다. 올해 100세가 됐다는 이재인 어르신은 2번이 적힌 번호표를 보여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8시 반쯤 왔지. 하는 일도 없는데 동네 사람들 얼굴도 보고 얘기도 하고. 날이 좀 풀리긴 했는데 쌀쌀하네. 그래도 센터에서 핫팩을 나눠줘서 괜찮아.”

올해로 19년째 ‘행복 한 그릇’이란 이름으로 지역 어르신들의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있는 기흥중앙교회(이승준 목사) 사역 현장이다. 센터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있는 상가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코끝에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와닿았다. 교회 간판을 따라 올라간 3층엔 예배당 한 편 주방에서 10여명의 사람들이 조리한 음식을 도시락에 담으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흥중앙교회(이승준 목사) 예배당에 모인 봉사자들이 지난 11일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다.

이 교회 사모인 송진숙 기흥무료급식센터장은 “목요일 오전 9시면 사랑 담은 도시락을 위해 팔 걷어붙이고 모이는 사람들”이라며 웃었다. 도시락엔 뜨끈한 콩나물국에 제육볶음과 브로콜리 무침, 조미김 등 5찬이 담겼다.

약속한 시간, 봉사자들과 도시락을 나눠 들고 센터에 도착한 이승준 목사가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는 것으로 배식이 시작됐다. 이날 준비한 100개의 도시락을 나눠주는 데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유미숙(가명·87) 어르신은 “목요일 이 시간이 동네에서 무료로 밥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며 “도시락에 밥을 듬뿍 담아줘서 절반은 반찬과 먹고 나머지는 함께 주는 라면 한 봉지를 끓여 같이 먹으면 두 끼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무료 급식 나눔은 예상치 못하게 시작됐다. 1995년 이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 사역 중이던 이 목사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 살배기 아들을 잃었다. 주민들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신갈오거리에서 교통정리 봉사를 하던 이 목사는 어느 날 거리에서 한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흥에만 독거 어르신들이 1000명 넘는다고 하더군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끼라도 어르신들에게 ‘더운밥’ 드리라고요.”(이 목사)

지금까지 무료 급식을 위해 쓴 재정만 수억 원. 출석 성도 40여명의 공동체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짐이지만 성도들의 헌신과 자원봉사로 동역에 나선 이웃 교회와 루터대학교, 시민단체 등이 짐을 나눠줬다. 10년 전엔 대출을 받아 새 교회당을 짓는 대신 무료 급식소로 사용해오던 공간을 리모델링 해 예배 처소를 마련하고 어르신들을 섬기는 결단을 내렸다.

예전엔 100인분 식사를 준비하는 데 20만~30만원이면 됐지만 요즘은 그 두 배 이상이 든다. 송 센터장은 “쌀이 떨어져 사역을 멈춰야 하나 고민할 때마다 예배당 앞에 쌀 포대를 두고 가는 손길도 있다”며 “아무리 여건이 어려워도 목요일 오전 도시락을 전달하면 ‘우리 예쁜이 왔네’ 하며 반겨주시는 어르신들 얼굴을 떠올리면 멈출 수가 없다”고 전했다.

배곯는 청소년들에게 아침밥을

끼니를 거르는 이들의 안타까운 현실은 노년 세대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이주용 경산아름다운교회 목사가 아침밥을 굶는 청소년들에게 15년째 도시락 나눔 활동을 펼치는 이유다. 경산청소년아침무료급식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 목사는 19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2010년 당시 전국 초중고교생들의 아침 결식률이 20.8%라는 발표를 접하곤 일단 아이들 밥부터 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한 게 나눔의 시작이었다”고 회고했다.

지역 내 결식 청소년들을 위한 도시락 준비를 위해 매주 수요일 경산아름다운교회(이주용 목사)에 모이는 봉사자들 모습.

경산중앙초 인근 식당을 베이스캠프 삼아 매주 수요일 새벽 4시부터 반찬을 만들고 오전 6시면 도시락 배송이 진행된다. 무료 급식 첫날 도시락 10개를 전달했던 센터는 지난달 누적 이용자 10만명을 넘어섰다. 지금은 매주 청소년 180명의 품에 따뜻한 도시락이 안긴다.

이 교회 역시 성도 수 30여명 정도의 작은 공동체다. 이 목사는 “수저 한 벌 없이 시작했지만 배곯는 아이들을 챙겨야겠다는 엄마 같은 마음이 식당 주인의 마음을 열고, 교회에 반감을 품던 기업 사장의 마음을 움직여 배달용 차량을 기부하게 하고 2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모으게 했다”고 설명했다.

거제의 닭백숙 맛집이 교회?

경남 거제를 대표하는 거제고현시장 인근에는 일주일에 한 번 지역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닭백숙 맛집이 있다. ‘토요 무료 급식’이 진행되는 거제울림교회(김정운 목사) 식당이다. 이곳에선 토요일 정오가 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푸짐한 닭백숙에 성도들이 직접 담근 고추장아찌와 깍두기가 손님들을 맞이한다.

거제울림교회(김정운 목사)가 매주 토요일 정오 제공하는 닭백숙, 이를 먹기 위해 지난 13일 교회 식당에 모인 주민들이 하트 포즈를 취하며 감사를 전하는 모습.

김정운 목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오랜 기간 집 안에서만 머무시던 어르신들이 떠올라 고민하던 차에 주중엔 노인대학, 노래교실 등이 많지만 토요일엔 무료하게 지내시는 이들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교회 곳곳엔 내부로 들어오는 이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다. ‘와서 배부르게 하라’(신 14:28~29)라고 적힌 큼지막한 플래카드다. 김 목사는 “성경은 분깃이 없는 약자들,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하나님의 전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고 말한다”면서 “최근엔 도내 조선소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닭백숙 단골이 됐다”며 웃었다.

따뜻한 밥 한 끼에 정성을 담아내는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녹록지 않은 사역 환경 가운데서도 이웃에게 생명을 불어넣듯 밥을 짓는다는 것이다.

“밥 드시고 웃으며 돌아가는 어르신 뒷모습을 보는데 마치 생명이 하루 연장된 것 같았어요.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의식주에서도 가장 기본은 ‘밥’이지요. 교회가 끊임없이 온기 어린 밥을 전하는 이유입니다.”(이승준 목사)

용인=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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