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분노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이명희의 인사이트] 분노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입력 2024-01-30 04:03

무차별적 분노와 혐오
물질 만능이 낳은 자화상

정치인 테러, 목사까지 가세
도 넘은 편가르기 정치

인간에 대한 예의·사랑 없어
하나님 뜻 알고 세상을
통찰하는 혜안 필요하다

미국 골든글로브상 3관왕에 이어 에미상에서 남녀주연상, 감독상을 포함해 8개 부문을 석권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원제: BEEF)이 역주행하고 있다. 한국계 이성진 감독은 “처음 로스앤젤레스에 왔을 때 돈이 없어서 통장 잔액이 마이너스 63센트였다. 드라마 속 자살에 대한 아이디어는 저와 여기 있는 사람 일부가 수년 동안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했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대로 낯선 나라에서 때론 보이지 않는 차별과 멸시를 견디며 살아내야 하는 이민자들의 애환과 외로움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을 터다.

이 드라마가 더욱 호평받은 것은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분노와 외로움으로 곪아 터진 인간 내면을 예리하게 포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살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 샀던 가스난로를 반품하러 갔지만 영수증이 없어 반품도 못 하고 돌아가려던 한인 2세 대니(스티븐 연)는 ‘빵빵’대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감춰뒀던 분노가 폭발한다. 성공한 사업가지만 남편과 백인 부자 친구들 앞에서 주눅이 들어 눈치를 보던 중국계 2세인 에이미(앨리 웡) 역시 엉뚱한 곳에서 화풀이 상대를 찾는다. 죽기 살기로 상대는 물론 자신까지 파멸로 끌고 가는 이 둘의 모습은 경쟁사회, 물질사회에 지친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신계급사회가 고착화하면서 한국사회는 터지기 직전의 용광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달 초 부산에서 60대 남성에게 피습당한 데 이어 지난 25일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강남의 한 건물에서 열다섯 살 중학생에게 습격당했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백주대낮에 테러라니 끔찍하다. 그것도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고 경제대국 10위권의 한류로 세계를 정복한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무엇이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희망을 얘기해야 할 10대 중학생까지 정치테러로 내몰았을까. 자신과 이념이 다르다고 폭력을 행사하고 재갈을 물리려 겁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의에 분연히 맞서 들불처럼 일어나는 정당한 분노도, 더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양분이 되는 풀뿌리 정치도 아니다. 단지 유튜브와 SNS에 넘쳐나는 극단의 혐오 정치, 극렬 팬덤 현상, 가짜뉴스가 만들어낸 ‘괴물’일 뿐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뉴스만 골라보고, 이를 맹신하는 확증편향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거대 양당이 자초한 극단의 정치, ‘내편 네편’ 갈라치기 정치가 국민과 나라를 두 동강 나게 했다. 상대 진영을 향한 원인 모를 분노와 증오가 분출한다. 경쟁사회에서 뒤처지는 데 대한 열등감, 가진 자와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한 상대적 박탈감, 되는 것 하나 없는 일상에 대한 무기력함이 집단광기로 표출되고, 증오를 낳고 혐오로 배설된다. 인간에 대한 예의나 사랑, 연민, 타협이나 상생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가장 신성해야 할 성직자들마저 정치판에 편승해 국민 분열을 부추기는 모습은 불편하다. ‘태극기부대’를 선동하는 광화문의 정치 목사들이나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에 등장하는 몰카 시계를 차고 함정 취재를 한 재미교포 목사도 목사답지 않다. 국민 상당수는 경위야 어찌 됐든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가 부적절했다고 본다. 탐심이든 부주의든 대통령의 사과나 납득할 만한 설명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함정 취재를 하고 이를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더구나 소위 ‘목사’라는 사람이 특정세력과 공모해 그런 일을 벌였다. 공익 목적의 제보였다고 주장하지만 갈등으로 분열된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상처받은 심령을 위로하고 돌보는 데 힘써야 할 목사들이 양쪽으로 갈라져 진흙탕 싸움을 부추기고 정치공세를 벌이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이러니 목사와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것 아닌가. 넷플릭스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목사의 일그러진 모습이나 반기독교 이미지는 이런 현실 속 가짜 목사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부끄러움은 세상의 편견과 날카로운 비수에 항의조차 못하고 묵묵히 사역하고 있는 대다수 선량한 목회자들의 몫이다. 나치시대 실천주의 신학자 카를 바르트가 외친 ‘한 손엔 성경을, 한 손엔 신문을’처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세상을 통찰하는 혜안이 절실한 시대다.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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