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12개 난치암 ‘단백유전체 연구’ 암 치료 틀 바꾼다

[And 건강] 12개 난치암 ‘단백유전체 연구’ 암 치료 틀 바꾼다

암단백유전체연구사업단 출범 6년째, 속속 결실

입력 2024-02-06 04:05
기존 유전체·전사체학에 더해
미지의 영역인 ‘단백체학’ 주목
국가 차원서 연구사업단 꾸려

환자 단백체·유전체 통합 분석
혁신적 연구 결과 잇따라 발표
“2∼3년 내 데이터 연구 마무리
국내 완치율 획기적 개선 기대”

암 환자가 진료를 받는 장면. 최근 암세포의 유전적 변이와 단백질 발현 패턴을 통합 분석해 암의 발생 및 진행 과정을 이해하고 새로운 치료 전략을 모색하는 단백유전체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전립선암은 조기 발견과 수술, 호르몬 치료 등을 통한 성적이 좋아 5년 생존율이 90%를 웃돈다. 하지만 일부 환자에게선 호르몬 치료가 듣지 않는 ‘불응성 전립선암’이 발견된다. 이 경우 예후가 좋지 않다. 마찬가지로 자궁경부암도 초기일 경우 5년 생존율이 80~90%나 되지만, 일부 방사선 치료에 저항성을 보이는 유형이 존재한다. 2021년 기준 국내 전체 암 생존율은 72.1%로, 10명 가운데 7명이 5년 넘게 살고 있다. 반대로 30% 가까운 암 환자는 여전히 진단 후 5년이 안 된 채 사망한다는 얘기다. 진행·재발한 암이거나 표준 치료법이 없는 희귀난치암이거나 마땅한 표적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암 환자들이 여기 해당한다.

이런 ‘미완의 30% 암’을 극복하고 완치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로 2018년 4월 국립암센터에 국가 단위 암단백유전체연구사업단이 처음 꾸려졌다. 올해 6년째를 맞아 12개 ‘한국형 난치암’에 대한 혁신적인 연구성과를 잇따라 내놓으며 결실을 보고 있다. 사업단은 1600여명 국내 암 환자 조직의 단백체와 유전체를 통합 분석하는 정밀의학 플랫폼을 구축해 각 암종의 새로운 특징을 규명하고 기존에 없던 세분화된 치료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암 환자 개인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치료 가능성을 높이고 암 정복에도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왜 암단백유전체 연구인가

암은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성장해 발생한다. 1950년대 생명체의 설계자인 DNA 구조가 처음 발견되면서 발전한 ‘유전체학(Genomics)’ 덕분에 암 연구와 치료 기술은 큰 폭으로 진전했다. 이어 유전자 발현을 지시하는 과정(DNA 유전정보를 mRNA가 전사해 옮김)을 연구하는 ‘전사체학(Transcriptomics)’을 통해 유전자가 어떻게 활성화되고 조절되는지 이해하는데 관심이 쏠렸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생명현상의 실제 실행자, 즉 일꾼인 단백질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단백체학(Proteomics)’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암세포의 비정상적인 단백질 발현이나 활성화는 암의 발생, 성장, 전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박종배 암단백유전체연구사업단장은 5일 “인간의 유전체는 약 2만5000개인데 그로 인한 최종 결과물인 단백체는 600만개나 된다. 단백체는 아직 밝혀야 할 게 많은 미지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쌍둥이(동일한 유전자)라도 한쪽은 암에 걸리지만 다른 한쪽은 걸리지 않는 이유가 단백체의 차이에 있다. 전 세계가 질병의 진단과 치료, 신약 타깃(바이오마커) 발굴 등 정밀의료 실현을 위해 단백체학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유전체와 전사체, 단백체 등을 통합해 생명현상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단백유전체 연구가 트렌드로 급부상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암의 정밀의학 및 개인 맞춤형 치료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암단백유전체 연구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박 단장은 “단백체와 유전체 데이터의 통합은 암의 복잡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유전체 변이만으로는 암세포의 실제 기능적 변화를 완전히 설명하기 어렵다”면서 “단백유전체 연구가 미래 암 치료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중요한 구심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악성 뇌종양, 담도암 새 치료 전략 제시


암단백유전체연구사업단은 출범 후 산하 14개팀의 다기관 연구자들이 12개 한국형 난치암 환자 1600여명의 조직을 채취해 단백유전체 데이터의 분석과 통합 작업을 거의 끝냈다. 현재 차례로 암종별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속속 발표하고 있다.

12개 암종에는 표준 치료법이 없는 희귀난치암(육종암, 담도암, 악성뇌종양)과 진행성 재발암(삼중음성유방암, 방사선 저항성 자궁경부암, 호르몬 치료 불응 전립선암), 한국 여성에게 특히 많은 40세 미만 젊은 유방암과 소아뇌종양(수모세포종) 등 조기 발병 암들이 포함돼 있다. 또 두경부암 방광암 신장암 위암 등 한국인에서 자주 생기지만 적절한 표적 치료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일부 암들도 들어가 있다.

이 가운데 두경부암, 수모세포종, 신장암, 40세 미만 유방암, 삼중음성유방암, 전립선암, 악성 뇌종양(교모세포종) 등 7개 암종의 단백유전체 데이터는 국가암데이터센터를 통해 공개해 외부 연구자들이 활용토록 하고 있다. 나머지 암종들도 올해 안에 차례로 공개할 예정이다.

아울러 박종배 단장과 김경희 박사팀은 치명적인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이 치료 저항성을 갖는 새로운 기전을 밝혀내 국제학술지(Cancer cell) 최신호에 보고했다.

교모세포종은 전체 뇌종양의 45~55%를 차지하며 대다수 환자가 2년 이내에 재발을 경험한다.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교모세포종 원발-재발암의 단백유전체 분석을 진행했고 유전체만으로 예측하지 못했던 신경세포와 종양세포의 상호작용을 통해 암세포가 ‘신경세포화’되면서 표준 암 치료에 저항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원발암이 치료 과정에 항암·방사선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신경세포와 유사한 세포로 형질을 바꿔 회피한다는 것이다. 박 단장은 “뇌 안에 있는 신경네트워크 속으로 암세포가 숨어 표준 치료를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암세포의 적응 과정을 촉진하는 중요한 바이오마커(WNT/PCP, BRAF 신호경로)를 발굴하고 교모세포종의 새로운 치료 옵션으로 제시했다.

앞서 사업단 산하 담도암 연구팀(국립암센터 박상재 교수 등 공동팀)은 난치성인 간 내 담도암 환자의 단백유전체 분석을 통해 해당 담도암에 3가지 하위 유형이 있음을 밝혀내고 각각 맞춤형 치료 전략을 제안했다.

박 단장은 “40세 미만 젊은 유방암과 방사선 저항성 자궁경부암, 소아 뇌종양에 관한 연구도 거의 정리돼 조만간 논문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2~3년 내 모든 연구와 데이터 공개를 마무리하고 향후엔 실제 환자 치료에 적용하는 임상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국내 암 환자의 치료 수준과 완치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백유전체 연구, 정체 중인 국내 암 생존율 끌어올릴 것”

박종배 암단백유전체사업단장

임상연구 등 국가 차원 투자 필요

“단백유전체 연구는 70%대 초반에서 정체 중인 국내 암 환자 생존율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기여할 것입니다.”


국립암센터 박종배(사진) 암단백유전체연구사업단장은 5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12개 한국형 난치암의 1단계 표준 데이터 구축과 연구에 이어 이를 통해 제시된 새로운 치료 전략을 실제 암 환자에게 적용하는 2단계 임상연구가 필요하다”면서 “대규모 비용이 소요돼 국가 차원의 연구비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앙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2.1%다. 국가암정복사업이 시작된 1990년대 40% 초·중반이었던 암 생존율은 이후 10여년간 비약적으로 올랐으나 2010년대 이후 70%대 초반에서 횡보하고 있다. 박 단장은 “국가 암검진사업을 통한 조기 발견과 수술·항암제 등 치료술의 발전, 예방 백신의 보급 덕분이지만 여전히 표준 치료법이 듣지 않는 재발·전이암과 희귀난치암 등이 극복 못 하는 30%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단장은 이런 난치암 극복의 해법이 단백유전체 연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미래에는 단백유전체학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과 결합해 더 정밀하고 효율적인 암 치료법 개발이 가능해지고 이런 기술의 발전이 암 치료 성공률을 높이고 부작용은 줄이며 환자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전 세계 암단백유전체 연구는 미국과 중국 대만 등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미국은 2011년 국립암연구소(NCI) 주도로 임상단백체종양분석컨소시엄(CPTAC)을 출범하고 5년 단위의 대규모 단백유전체 연구에 1000억원 안팎의 막대한 연구비를 쏟아붓고 있다. 한국과 달리 15개 호발암 대상으로 표준 데이터 구축을 끝냈고 일부 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한국 암단백유전체연구사업단은 한국형 난치암의 후속 임상연구 추진을 위해 CPTAC와 최근 연구협력을 맺었다.

중국은 지난해 매년 3조원씩 10년간 30조원을 지원하는 단백체 기반 임상연구 프로젝트 ‘파이(π)-허브’를 출범시켰다. 박 단장은 “한국의 암단백유전체 연구 수준은 세계 최고에 이미 도달했지만,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실제 임상연구와의 결합이 매우 부족하다”면서 “암단백유전체 기반 정밀의료를 가속화하기 위해선 미국이나 중국처럼 국가 주도의 대형 연구사업 추진이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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