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저를 목사로 만들려고 개그라는 연단을 허락하신 게 아닐까요”

“하나님이 저를 목사로 만들려고 개그라는 연단을 허락하신 게 아닐까요”

목회자로 제2의 삶 개척한 개그맨 출신 최형만 목사

입력 2024-02-1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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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만 목사가 최근 인천 연수구 동춘교회 본당에 앉아 밝게 웃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개그맨 최형만(57)은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20년 가까이 무대에 홀로 서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역할로 사람들을 웃겼다. 유명 국어 강사를 흉내 내며 ‘밑줄 쫙’ ‘돼지꼬리땡야’라는 유행어, 도올 김용옥 교수의 성대모사처럼 말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목회자로 살고 있다. 최근 인천 연수구 동춘교회(윤석호 목사)에서 만난 그는 새가족부 담당 목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이 저를 목사로 만들려고 혼자서 하는 개그라는 연단 과정을 허락하신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최형만이 새 성도를 환영하는 법
최형만 목사가 동춘교회 본당 앞에 걸린 교회 청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최 목사가 목회 활동 중인 동춘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 소속 교회다. 아파트 옆 상가 건물 3층에 자리잡고 있으며 1700여명의 성도가 예배드리고 있다. 최 목사는 교회에 처음 나온 새신자들에게 15~20분가량 복음을 설명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가 새 식구들에게 가장 먼저 하는 환영 인사는 “진짜 잘 오셨다”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모두를 다 가질 수 없지요. OO 성도님은 그중에 하나를 택하셨는데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을 고르셨네요. 정말 탁월하십니다” 하는 식이다.

그가 목회자로 일하며 가장 듣기 좋은 칭찬은 ‘복음을 쉽게 설명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는 “한 권사님이 ‘최 목사 덕분에 어렵게 느꼈던 성경이 쉽게 이해됐다’고 말할 때 참 감사했다”고 했다. 무대에서 대중을 상대한 경험 덕분일까. 그는 전달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듣곤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하나님을 맛보면 어떤 걸 먹어도 맛이 없어요. 제가 뇌종양 후유증으로 신물이 올라온 적이 있는데 그때 어떤 걸 먹어도 맛이 없더라고요.”

최 목사는 경기도 고양 거룩한빛광성교회(곽승현 목사)에서 3년간 전도사로 활동하다 2020년 동춘교회에 오게 됐다. 설교 콘퍼런스에서 함께 공부하다 만난 담임 윤석호 목사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신앙 멘토’ 이재철 목사 만난 뒤 신학 공부
최형만 목사가 현역 개그맨 시절 도올 김용옥의 강의 장면을 흉내내고 있다.

최 목사는 개그맨 시절부터 연예계의 알아주는 독서광이었다. 그는 연예계 활동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주로 책을 읽으며 풀었다. 한때 집에 보관한 책이 1만2000권에 달한 적도 있었다.

개척교회 목사였던 그의 부친은 최 목사가 9살 무렵 이민 사기를 당했다. 최 목사는 그때부터 연예계 데뷔 때까지 어렵게 살았다. 개그맨으로 활동하면서 큰돈을 만졌지만 잘 다룰 줄 몰랐다. 그는 “개그맨으로 잘나가던 시절 매해 거르지 않고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바쁜 연예 활동 중에도 주일 성수는 거르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보니 자신은 진짜 신앙인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마흔이 될 무렵 서울 마포구 100주년기념교회 담임이었던 이재철 목사가 쓴 책에 감명을 받고 교회를 옮기면서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최 목사는 “여러 차례 사기로 재정이 무너지고 어머니가 파킨슨병으로 돌아가신 즈음이었다”며 “집에 보탬이 되려고 아내가 부동산에 투자한 것도 크게 실패하면서 가정마저 깨질 뻔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최형만이 목사 포기하려던 까닭

그때 만난 이재철 목사는 최 목사에게 신학을 권유했다. 평신도였던 그는 당시 “저는 목사는 안 합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 목사는 “공부만 해보시라”고 재차 권했다. 그렇게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 그 무렵 연예계 활동도 부진했다. ‘하나님은 내가 개그맨으로 성공하는 걸 원하지 않으시나 보다’ 하는 생각도 한몫했다.

신대원에는 덜컥 입학했지만 책을 읽는 것과 신학 공부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최 목사는 ‘교회 안에서 섬김만 받던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섬길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괴로워하다 결국 휴학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휴학 직후 2년 정도 성경공부에 매달렸다. 신대원 성경 강의를 1년간 수강했고 전국의 성경 관련 세미나와 강연을 모조리 찾아다녔다.

관련 책도 엄청나게 사 모았다. 공원에서 큰 소리로 성경을 암송하다 미친 사람 취급당한 적도 많았다. 최 목사는 “성경의 장 제목을 다 외웠다”며 “누가 울고 있으면 그에게 ‘걱정하지 말고 시편 56편을 읽어보세요’라고 바로 말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웃었다.

최형만을 잡아준 아내와 어머니
최형만 목사가 2020년 4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명성교회에서 열린 목사안수식에서 아내와 아들, 장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형만 목사 제공

최 목사의 모친은 생전 아들이 TV에 얼굴을 비출 때마다 “형만이가 있어야 할 곳은 저기가 아닌데…” 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최 목사는 이런 이야기를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이모를 통해 전해 들었다. 또 가정 형편이 나아질까 싶어 투자했다 실패한 아내가 매일 기도원에 다니다 천국 확신을 하게 되면서 남편의 신학 공부를 독려했다. 그렇게 최 목사는 신대원 휴학 8년 만에 복학했다. 그는 “아내는 그전까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며 “요즘도 ‘당신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확고한 결단으로 시작한 목회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3년 전 발견된 뇌종양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15년 동안 이석증으로 알았던 어지러움의 원인이 머리에 조금씩 자라난 3.8㎝짜리 크기의 종양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최 목사는 14시간, 18시간에 걸쳐 각각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탈모로 민머리 스타일을 해온 최 목사의 왼쪽 뒤통수엔 길게 일자로 난 수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주님 없이 안됩니다” 단 하나의 고백

그는 연예인과 목회자 두 영역 사이에 공통점을 깨달았다. 최 목사는 “TV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스타를 보면서 나는 왜 이러나 하며 좌절한 적이 많았다”며 “하지만 TV 밖에서 더 많은 연예계 종사자들이 울고 있다”고 했다. 이어 “목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크고 좋은 교회만 쳐다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개척교회, 작은 교회 목사들은 정말 어렵게 목회한다”며 “주변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를 한답시고 ‘하나님이 당신을 안 쓰나 봐’ 하는 농담에 무너져 내리기 일쑤”라고 덧붙였다.

최 목사는 동춘교회에서 사역하는 동안 짬을 내 지방의 작은 교회를 위해 설교하기도 한다. 그는 “아르바이트해서 받는 정도의 사례비로 생활하는 목사님들이 참 많다”고 했다. 이어 “제 이야기가 TV에 나온다고 해서 이곳저곳에서 많이 부르겠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도 했다. 최 목사는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지 않으신다. 진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시더라”며 “제 입에서 ‘나는 쓰레기같이 형편없는 사람이라 주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는 고백이 있을 때까지 쓰시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잠든 영혼 깨우며 말씀만 전하고파”
최형만 목사가 운영하는 복음 유튜브 채널 ‘최형만의 기상나팔’ 메인 화면.

그는 최근 유튜브 채널 ‘최형만의 기상나팔’을 개설했다. 서울대 박사 출신인 박희원 넷제로홀딩스그룹 대표와 동역하고 있다. 잠든 영혼을 깨우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유튜브 채널은 우울증으로 힘들었던 때 비기독교인 개그맨 후배가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왜 썩히느냐.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냐’고 한 일갈로 시작됐다. 그는 “‘재밌어요, 웃겨요’가 아닌 ‘좋은 말씀 감사하다’는 댓글이 참 보기 좋더라”며 “좋은 참기름을 병에 담는 것 같은 이치로 귀한 복음의 말씀을 아무것도 아닌 최형만에게 담아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최형만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기를 바라냐고 묻자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무명’이라고 답했다. 없을 무(無)와 춤출 무(舞)가 모두 담긴 뜻이라고 했다.

“유튜브를 하다 보니 제 이름을 검색해보는 일이 잦아지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네 이름이 중요하냐, 내 이름이 중요하냐’는 마음을 주시더라고요. 뜨끔했습니다. 제 꿈은 하나님 말씀만 선포하다 죽는 겁니다. 말씀 앞에 ‘인간 최형만’은 없는 존재처럼 내려놓고 기쁨에 겨워 춤추는 다윗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인천=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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