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쪽지] 인생의 진실에 대하여

[철학 쪽지] 인생의 진실에 대하여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

입력 2024-02-17 04:06

현대 미술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라는 설치미술 작품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5m 크기의 죽은 상어를 포름알데히드가 담긴 대형 수족관에 넣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상어의 사체 안에는 동력장치를 설치해 지느러미가 움직이게 했다. 그래서 이 상어는 죽었으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살았는지 죽었는지 애매한 상태가 지금 우리의 삶은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듯하다.

작품 제목, 살아있는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 불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생각한다는 의미의 제목으로 볼 때 우리는 죽음이 가까이 있는데도 죽음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 제목이 매우 철학적이다. 철학은 전체를 보고자 하는 것이고 인생은 살아가는 과정이 곧 죽어가는 과정인 그 무엇이니 말이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우리는 ‘살아간다’의 측면만 생각하고 ‘죽어간다’의 측면은 인식하지 못한다. 생명의 존재인 인간은 생명이 아닌 것을 싫어한다. 생명의 존재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마치 죽음은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나도 아버지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시기 전까지는 부모님들이 중병에 걸리시는 일이 우리집에서 일어날 줄 몰랐다. 뇌출혈로 돌아가실 수도 있었던 위기를 넘기셨을 때 죽음이 이렇게나 가까이 있다는 자각에 망연자실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알면서도 모르는 일’이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들은 매일 오늘 오늘 하다가 어느 날 ‘죽는 오늘’을 맞이한다고 서술한 바 있다. 이러한 태도는 ‘시간성을 의식하지 않는 태도’이다.

인간이 시간의 존재임을 의식하면 삶에 대한 생각이 매우 달라진다. 인생을 ‘살아간다’의 차원에서만 보면 인생은 가져야 할 것, 쌓아야 할 것투성이가 된다. 그러나 ‘죽어간다’의 차원에서 보면 놓아야 할 것, 나눠야 할 것투성이가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직도 못다 이룬 꿈이 있고 아직도 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 그런데 삶을 ‘살아간다’의 차원에서만 보면 나만 못 이룬 것 같고 나만 못 가진 것 같아 억울해진다. 그런데 삶을 ‘죽어간다’의 차원에서 보면 나보다 못 가진 사람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 무섭기 때문에 인생의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진다. ‘살아간다=죽어간다’라는 단순한 진실을 직면하지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쁘다. 그러나 ‘살아간다’의 측면에서만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나이 들어서 ‘나의 삶을 산 것이 맞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고 삶의 허무가 물밀 듯 닥쳐오게 된다. ‘죽어간다’의 측면도 살피면서 살아갈 때 진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죽어가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과정만이 진정한 ‘나의 삶’이 된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