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의대’가 꿈인 세상

[세상만사] ‘의대’가 꿈인 세상

김유나 사회부 차장

입력 2024-02-16 04:02

사회부 사건팀장을 하던 지난해 일이다. 당시 ‘일타스캔들’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하던 때였다. 오직 의대 입시만을 목표로, 일타강사가 전담하는 ‘의대 올케어반’ 구성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다.

드라마는 이미 현실이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는 수년 전 현실판 ‘의대 올케어반’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개설된 상태였다. 의과대학 증원으로 시끄러운 지금,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들의 보고를 다시 열어봤다. 밤 9시30분이 넘은 시각 작은 몸에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교재를 담은 초등학생이 우르르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귀가 차량을 기다리던 학생들의 손에는 수능 기출 문제집이 들려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물었다. “꿈이 뭔가요.” “왜 의사가 되고 싶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의대 준비반에 다녔다던 열세 살 학생은 “내 꿈은 서울대 의대”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처럼 의사가 되려면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해서 엄마가 (의대 준비반을) 다니라고 했다”고 말했다. 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 다른 학생 역시 “아빠가 의사라서”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의사는 높은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 직업으로 꼽힌다. 이 학생들이 가족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그 직업을 동경하며 자랐을 수는 있다. 하지만 부모의 권유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부모의 직업을 자녀에게 대물림해주려는 경향은 대개 좋은 직업으로 분류되는 영역에서 두드러진다. 자식이 고생하고 보상이 적은 직업을 갖길 원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노동 시장에서 노동 강도와 위험성(긴급성), 소수의 전문성을 가질수록 높은 보수는 당연한 조건이 된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나와 내 가족을 살리는 ‘의사 선생님’이 많은 돈을 받으며 병원을 지키는 것은 누구도 비난할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필수의료를 외면하고 돈이 되는 미용 성형으로 가는 의사들을 보며 국민은 불안감마저 느끼고 있다. 응급 상황에서 혹여 의사가 없어 제때 처치를 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지경이 됐다. 필수의료 현장을 지키다 힘에 부쳐 떠날 수밖에 없던 의사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애초에 미용 시술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꿈’이 돼 버린 현실이다. 의사 단체는 이미 의사 수가 많아 특히 수도권에선 경쟁이 치열해 수익을 크게 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또 피부 미용이라도 체력 소모가 크다고도 주장한다. 지난해 12월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이 전공의와 개최한 간담회에서 한 참석자는 “제모만 해도 살 타는 냄새를 항상 맡아야 하고, 미용 분야도 노동집약적인 술기(의학적 기술)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힘들어서 의사들이 미용 분야를 기피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2017년 대비 2022년 서울의 소아청소년과는 12.5% 줄어든 반면 피부과는 13.9% 늘었다.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들의 우려 속에는 ‘밥그릇 걱정’이 아니라 의학 교육의 질을 걱정하는 진심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의대 증원을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논의를 해야 한다. 또 ‘의사 선생님’들이 많은 돈과 보상을 받고, 숭고한 직업적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한 ‘필수의료 지원 대책’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의견을 낼 때다. 필수의료가 회복된 미래에는 의사를 꿈꾸는 아이들에게서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듣고 싶다.

김유나 사회부 차장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