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철 칼럼] 김건희 리스크보다 이재명 리스크

[노석철 칼럼] 김건희 리스크보다 이재명 리스크

입력 2024-02-16 04:20

윤 대통령은 총선 악재 우려해
유럽 방문까지 연기하며 조심
韓은 공천 작업 속도 내는데

민주당은 사당화 논란 계속
비명계 이어 임종석 배제 시도
공천 과정 李 비선개입 의혹도

이재명, 벌써 대선 계산하는데
이번 총선 지면 모든 게 물거품
스스로 선당후사 역할 찾아야

윤석열 대통령이 독일과 덴마크 방문 계획을 출국 나흘 전에 연기한 것은 심각한 외교적 결례다. 상대국 국가원수나 부처 장관, 경제인들이 모두 일정을 비워놓은 상황에서 연기하려면 국가적 재난에 준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로 미국 방문을 순연했지만 이번 대통령실은 “경제·민생·안보 등 국내 현안 집중 필요성”을 거론했다. 궁색한 구실이다. 총선의 악재인 김건희 여사를 노출시키지 않고, 돌발 변수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로 짐작된다. 총선을 위한 고육책인 셈이다. 외교적 결례를 감수하더라도 ‘김건희 리스크’를 꽁꽁 묶어두겠다는 것이다. 김 여사는 지난해 12월 15일 이후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다. 다음 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방한하면 몰라도 총선까지 김 여사는 행보를 자제할 듯 싶다. 윤 대통령도 최근 KBS 대담에서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을 거론한 이후 민생 투어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윤석열·김건희는 빠지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을 이끄는 구도를 짠 게 아닐까.

한 위원장은 일사불란하고 속도감 있게 공천 작업을 진행 중이다. 김성태 전 원내대표는 공천 배제 결정에 거칠게 반발하더니 곧 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2차까지 50명 단수공천 명단에는 대통령실 출신이 전희경 후보 한 명뿐이었다.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석동현 변호사도 컷오프됐다. 따라서 한 위원장의 ‘윤석열 아바타’ 우려와 수직적 당정관계 비판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야권의 ‘정권 심판론’도 방향을 잃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을 보면 너무 안이하고 근거없는 자신감에 차 있다. 이재명 대표의 눈은 벌써 2027년 대선을 바라보는 듯하다. 총선에서 당을 친명계로 물갈이하고 잠룡들은 공천 배제해 당내 견제세력 없이 다음 대선까지 독주하겠다는 게 아니면 최근 행보는 이해가 안 된다. 비명계 의원들은 이미 당내 살벌한 분위기를 스스로 못견디고 제 3지대로 뛰쳐나갔다. 그 자리엔 친명 완장을 찬 사람들이 공천을 노린다. 친문 핵심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윤 정부 탄생 책임’이란 굴레가 씌워졌다. 이 대표는 “떡잎이 져야 새순이 자란다”며 당내 ‘올드보이’의 희생을 주문하지만 의도가 불순하다며 반발이 심하다. 문학진 전 의원이 불출마를 권유받자 당내 원로들은 “경기도 팀 등 정체불명 비선 조직의 공천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 대표가 사심을 품고 친명계를 위해 불공정한 공천을 한다는 의심을 사면서 당의 공천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계속되는 사당화 논란은 이 대표에게도 독이다. 이 대표는 다음 대선이 아니라 이번 총선 승리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당장 총선에서 지면 이 대표에게는 다음 당권도, 대권도 기회가 사라진다. 여러 계파의 힘을 모아도 힘겨운 총선이 될 텐데 사당화 논란을 방치하면 모든 게 물거품 될 수 있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 압승이란 착시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21대 총선과 지금은 완전히 판이 다르다. 지난 총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진영에 대한 적폐 이미지가 여전했고,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정권 안정론 등 덕분에 민주당이 압승했다. 지금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103석을 얻는 건 언감생심이다. 최근 JTBC 의뢰 메타보이스 여론조사에서 어느 당 후보를 찍을지 묻는 질문에 민주당 35%, 국민의힘 34%였다. 정권 심판론도 거세지만 민주당 후보도 찍기 싫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게다가 이 대표는 대장동·위례·백현동 개발비리와 성남FC 후원금 의혹, 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등 수많은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 중 하나만 유죄가 선고돼도 대선 출마는 불가능할 수 있다. ‘이재명 리스크’는 지금부터다. 검사 출신인 한 위원장은 이런 약점을 이용해 민주당을 부패 프레임에 가두고 있다. 그가 “독립운동가가 돈 봉투 돌리고 룸살롱 가느냐” “공당을 대장동 운영하듯 한다”고 공격해도 민주당은 반박이 쉽지 않다. 여기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까지 총선 출마를 선언한 것도 민주당엔 악재다. 따라서 지금 이대로는 총선 패배라는 민주당 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대표의 2선 후퇴와 비대위 체제로 돌파하자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이 대표가 불출마나 험지 출마를 선언하면 선거판이 바뀔 텐데, 지금 민주당이 들을 얘기도 아니고 이미 때가 늦은 것 같기도 하다.

노석철 논설위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