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한반도포커스]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김동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군사안보)

입력 2024-02-19 04:07

평화에 대해 강의하면서 학생들이나 청중에게 던지는 첫 질문은 늘 “지금 평화롭다고 생각하세요?”이다. 생각만큼 “예”라는 목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아뇨”라는 답변도 많지 않다. 북한학이나 군사안보를 전공하는 학생들조차 군사적 긴장이나 충돌 가능성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이는 드물다. 평화롭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도 천차만별이고 소박하다.

하루는 고등학생 딸이 생활과 윤리 문제를 내밀고는 설명해 달라고 한다.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에 대한 옳은 설명을 고르는 것이다. 신바람이 나 열심히 설명해 주었건만 명색이 대학에서 평화에 대해 가르친다는 교수인데 딸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듣겠단다. 오히려 자신이 이해한 것을 말해 볼 테니 맞는지 봐달란다.

고등학생 딸의 설명이다. 요한 갈퉁의 평화 이론에 따르면 평화는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가 있다. 평화를 만드는 노력과 행동이 소극적이거나 적극적인지에 따른 개념 구분이 아니다. 소극적 평화는 물리적 폭력이 부재한 상태다. 단순히 전쟁이나 군사적 충돌이 없다고 소극적 평화라고 볼 수 없다. 전쟁은 없으나 상호 위협적인 적대관계와 군비경쟁 등 갈등이 지속하는 상황도 소극적 평화 상태로 볼 수 없다. 그러면서 딸이 던진 질문이 망치처럼 머리를 내려친다. “그럼 힘에 의한 평화는 소극적 평화와 모순인가요?”

반면 적극적 평화는 물리적 폭력의 원인이 되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폭력까지 포함해 모든 폭력이 부재한 상태를 의미한다. 평화는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소극적 평화라는 목표는 적극적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힘에 의존하는 사회 구조와 무력에 의한 평화를 맹신하거나 혹은 묵인하는 사회 문화가 변화하지 않는 한 진정한 평화란 없는 거다.

딸의 설명을 듣고 고등학생 딸도 이해시키지 못하면서 그동안 어떻게 평화에 대해 강의해왔는지 부끄럽기만 했다.

국가의 평화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수에도 두 가지가 있다. 분쟁 상황, 테러 위험, 사회정치적 갈등 등 23가지 지표로 산출한 세계평화지수(GPI)는 전통적 안보의 시각에서 소극적 평화 수준을 나타낸다. 반면 적극적 평화지수(PPI)는 정부의 원활한 기능, 평등한 자원 분배, 자유로운 정보의 이동, 이웃과의 관계, 타인의 권리 인정, 부패 정도로 인간 안보의 관점에서 개인과 사회가 원하는 평화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를 실천하고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감대와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16일 카이스트 학위 수여식 도중 한 졸업생이 “연구·개발(R&D) 예산을 복원하라”고 외쳤다가 대통령실 경호원들에 의해 행사장 밖으로 강제로 끌려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그 자리에 있었던 대부분이 고개를 숙이고 외면했다. 앞서 지난달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악수하며 ‘국정 기조를 바꿔달라’고 말했던 진보당 강성희 의원도 경호처 경호원들에 의해 끌려나갔다. 경호원들이 힘으로 행사장 밖으로 끌어내 내팽개친 것은 국가의 품격이고 국민 개개인의 평화다. 이번 정부가 생각하는 평화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평화인지 궁금하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이 평화를 꿈꾸어왔다. 평화는 분명 우리 모두가지켜야 하는 소중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나 하나 눈감아 버림으로 느끼는 평화는 공포에 가려져 있는 일시적인 평화다. 거짓 평화는 언젠가 걷히고 내재해 있던 불안과 더 큰 폭력이 드러나면서 진정한 평화는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김동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군사안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