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가족은 죄가 없다

[청사초롱] 가족은 죄가 없다

장유승(성균관대 교수·한문학과)

입력 2024-02-21 04:01

중국 전국시대 각국은 천하의 패권을 잡고자 부국강병에 힘썼다. 인구가 곧 국력이던 시절인지라 인구를 늘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각국은 다양한 제도를 마련해 백성의 출산을 장려했다.

‘관자’에 나오는 제나라의 출산장려 정책이다. 우선 결혼을 권장한다. 도시마다 중매를 담당하는 관원을 둔다. 결혼하면 농사지을 땅과 살 집을 준다. 3년간 세금은 면제다. 아이 셋을 낳으면 어머니 세금을 면제하고, 넷을 낳으면 온 집안의 세금을 면제하고, 다섯을 낳으면 여기에 더해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보모를 붙이고 2인분 양식을 지원한다. 입양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고아 한 명을 입양하면 어른 한 명의 부역을 면제하고, 두 명을 입양하면 두 명의 부역을 면제한다.

‘국어’에 나오는 월나라 왕 구천의 정책은 보다 강압적이다. 남자는 20세, 여자는 17세가 지나도 혼인하지 않으면 부모를 처벌한다. 대신 출산을 앞두면 의원을 보내주고, 아들을 낳으면 술 두 병과 개 한 마리, 딸을 낳으면 술 두 병과 돼지 한 마리를 준다. 아이를 둘 낳으면 양식을 지원하고, 셋 낳으면 보모를 붙여준다.

이상의 출산장려 정책은 경제적 지원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역시 출산율을 높이려면 돈을 주는 게 제일인가 싶지만 그게 아니다. 경제적 지원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이다. 이 정책들이 노리는 것은 ‘가족’의 형성이다.

결혼과 출산은 옛날 사람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여러 남자와 여러 여자가 배우자를 공유하는 군혼(群婚)의 형태가 지배적이었다. 씨족사회의 보편적 관습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씨족 아닌 가족이 경제공동체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인구 증가가 국가의 번영을 가져오듯 가족 구성원 증가는 가족의 번영을 가져온다. 전국시대는 씨족사회에서 가족사회로 이행하는 시기다. 당시 진나라 상앙이 분가하지 않는 집에 세금을 두 배로 물리는 정책을 시행한 것도 씨족사회에서 가족사회로의 이행을 장려하는 정책이었다. 가족의 형성이 인구 증가를 유도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급격한 인구 증가를 견인한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가족이라는 관념이었다.

저출산 여파가 피부로 느껴지면서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아이 한 명을 낳으면 1억원을 주겠다는 기업도 등장했다. 하지만 경제적 지원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것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육아 전문가 오은영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돈을 많이 준다고 아이를 낳지는 않아요.” 그가 제시한 출산율 제고 방안은 다름 아닌 ‘가사와 육아에 대한 존중’이다. 가족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인식 변화 없이는 어떠한 대책도 소용없다는 말이다.

혹자는 가족주의가 오히려 저출산의 원흉이라고 지적한다. 과연 가족이 문제일까?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이 17개국 성인 1만9000명을 대상으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물었다. 14개국이 ‘가족’을 선택하고, 우리나라만 ‘물질적 풍요’를 선택했다. 물질적 풍요가 최고의 가치라면 가족은 짐이다. 가족을 행복 아닌 부담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리 없다.

가족의 행복보다 가족의 성공을 바라는 비뚤어진 가족주의는 바로잡아 마땅하다. 하지만 가족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무너져가는 집에서 대들보 뽑는 격이다. 그러니 결혼과 출산, 가족을 함부로 폄하하는 짓은 그만두자. 여성, 장애인, 소수자에 대한 비난은 금기시하면서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거리낌 없이 조롱하고 비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유승(성균관대 교수·한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