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精談] 집중력 위기 시대, 독서가 구원이다

[너섬精談] 집중력 위기 시대, 독서가 구원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입력 2024-02-21 04:02

산만함은 마음에 스며든 독
좋은 텍스트 잘 골라 천천히
많은 시간을 들여 즐겨보자

작년 한 해 동안 소셜미디어를 끊었다. ‘좋아요’ 같은 사소한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마음이 싫었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과몰입해 열광하는 사람들도 싫었고, 끝없이 콘텐츠 소비를 부추기는 알고리즘도 싫었다. 처음엔 심심하고 불안했으나 곧 삶이 고요해졌다. 강요된 콘텐츠가 아니라 스스로 고른 책을 더 많이 읽었고 모자란 운동도 꾸준히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산만함이 줄어들고 집중력이 늘어났다.

현대인의 집중력 저하는 무척 심각하다. ‘집중의 재발견’(위즈덤하우스)에서 글로리아 마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2000년대 이후 사람들의 몰입 시간이 갈수록 줄었다고 말한다. 2004년 미국인들의 평균 집중 시간이 150초였다면 2012년엔 75초, 다시 2016년엔 44초로 감소했다.

집중력 위기는 현대의 날파리들, 즉 수시로 울리는 휴대전화, 문자나 톡,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탓이다. 이들은 우리를 자꾸 밖으로 끌어낸다. 우리가 인생을 성찰하고, 내면을 돌아볼 틈을 주는 대신 잡다한 온갖 콘텐츠를 읽고 듣고 보게 한다. 그것도 2배속, 3배속으로 줄거리와 분위기만 훑어보게 만든다.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처럼 우리 안에서 존재의 근원이 드러나게 삶을 꾸려야 한다. 그런 거룩함이 없는 삶은 물거품 같은 여론과 공허한 수다 속에서 낭비될 뿐이다. 너무 많은 걸 끌어안은 삶은 아무것도 즐기지 못한다.

이 때문에 중세 수도사들은 “모든 사악함의 핵심은 방황하는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세속을 떠나 수행에 전념했던 그들은 잡생각에 유혹당하는 걸 두려워했다. “뱀이나 전갈을 병에 가두듯 원치 않은 생각을 가둬야 한다.” 산만함은 마음에 스며든 독처럼 여겨졌다. 내적 혼란을 일으키는 촉매이고 진리로부터 멀어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중요한 일에 헌신하는 걸 방해한다.

집중력 상실은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이 쏠려 자기 자신을 보살피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주변의 불필요한 소음이나 수다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마음에 떠오르는 잡된 생각을 걸러내지 못 하는 일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말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주의를 되찾아오는 능력이 없다면 누구도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 결과가 수면 부족, 실적 하락, 성취감 저하, 자존감 박탈, 인간관계 약화, 시민적 연대 상실 등이다. 자기를 잃은 사람은 타인도 챙기지 못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내 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집중력을 되찾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연구자들은 묵상이나 명상을 통한 마음 챙김,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 의미를 따져 묻는 자기 성찰 등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내 생각엔 콘텐츠를 대하는 방법을 바꾸는 게 가장 좋아 보인다. 2배속 읽기, 대충 읽기, 훑어 읽기 대신 콘텐츠를 천천히, 느리게 즐기는 것이다. 이는 ‘책을 읽는 방법’(문학동네)에서 일본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말하는 ‘느리게 읽기’를 원용한 것이다.

정보가 과잉 공급되는 사회일수록 ‘느리게 읽기’가 필요하다. 양의 독서보다 질의 독서가, 망라형 독서보다 선택적 독서가 더 중요하다. 시시한 정보를 이것저것 읽어봐야 자기 안엔 남는 게 없고, 인생은 산만해질 뿐이다. 좋은 책을 잘 골라서 많은 시간을 들여 집중해서 천천히 읽으면 그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치밀한 논리, 섬세한 감성, 절묘한 표현, 의미심장한 구절 등이 내 안에 단단히 자리 잡는다.

따라서 느리게 읽기, 즉 시간을 들여서 긴 텍스트를 꼼꼼하고 정확하게 읽는 과정은 그 자체로 주의력을 회복하고 집중력을 단련하는 과정이 된다. 인생에서 길을 잃었을 땐 언제나 책을 바라봐야 한다. 읽기가 우리를 구원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