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제 3지대 정당과 정치개혁

[여의도포럼] 제 3지대 정당과 정치개혁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4-02-22 04:02

여기저기 곪아터진 한국 사회
정치는 국민 오도, 권력만 추구
중도층, 구태 세력 외 대안없어

산업화 민주화 넘는 시대정신
추구하는 정치 세력 절실한데
이번 제 3지대 정당도 실망 줘

제3지대 정당, 양당제 타파와
대통령 만들기 정치 아니라
미래비전 다퉈야 승산 있다

제3지대 정당이 통합 열흘 만에 결별을 선언했다. 빅텐트가 제대로 틀을 갖추지도 못한 채 무너졌다. 무엇보다 정치개혁의 희망을 품었던 국민에게 큰 상처를 줬다. 분열의 과정이 거대 정당이 보여준 구태 정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더 뼈아프다. 사실 현재의 정치 지형은 제3지대 정당에 매우 유리한 구조다. 거대 정당과 그들이 장악한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더없이 높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2월 15~16일)에 따르면 유권자 이념 분포가 보수 28.3%, 진보 20.5%, 중도 40.8%로 나타났다. 중도 집단은 어느 정당을 지지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스윙 보터(swing voter)일 가능성이 높다. 제3지대 정당이 성공하려면 중도 집단이 원하는 정치를 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서구 정당에서 말하는 중도는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의 중간쯤에 위치한 이념 성향을 말한다. 계급정당으로 출발한 서구의 정당은 진보 정당은 노동자 계급의 가치와 이익을 그리고 보수당은 자본가 계급을 대표했다. 한국에서 중도는 이념 혹은 가치에 있어 중간적 입장을 지닌 집단이 아니다. 한국에는 애초부터 계급정당이 존재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나라 전체가 피폐해졌고 정치세력을 만들 수 있는 자본가도 노동자 집단도 없었다. 서구식 대중정당을 자처했지만 대표할 계급이 없었던 정당은 가치와 이념보다는 권력에만 몰두했다.

이념과 가치가 정치적으로 대표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운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1970년대부터이다.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 출발하는 대한민국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는 산업화와 민주화였다. 두 과제 중 어느 것이 우선인지는 이견이 있었지만 산업화와 민주화가 당시의 시대정신이란 사실은 명백했다. 다행히도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안타까운 점은 서로 다른 정치세력의 주도하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했다는 것이다. 보수세력은 산업화를 주도했고 진보집단은 민주화의 주역이었다. 1980년대까지 우리의 시대정신은 산업화와 민주화였다. 현재 한국은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고 국제적으로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이미 성취한 가치이고 우리의 미래 비전이나 시대정신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외형상 경제 선진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곪아 터지고 있다. 소득양극화와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나날이 올라가는 물가로 인해 매일매일 팍팍한 일상을 견뎌야 한다. 취업, 주거, 결혼, 육아 등 청년들이 감당해야 할 삶의 짐은 버겁기만 하다. 노인 세대의 삶도 만만치 않다. 고령화와 함께 빈곤, 질병, 고독에 대한 두려움은 더 짙어진다. 산업화만으로는 대응이 힘든 사회적 재앙이다. 민주주의 역시 위기 상황이다. 형식상 민주주의는 갖추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후진 정치 그 자체다. 정당이 주창하는 가치와 이념은 어느 때부터인가 국민을 오도하고 자기 편을 결집하기 위한 구색 갖추기에 불과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권력이다. 많은 국민이 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미래 비전을 보여줄 메시아의 출현을 그저 기다릴 뿐이다.

한국의 중도는 진보와 보수세력 모두를 배척하는 정치적 소외집단이다. 대안세력을 찾지 못한 이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혹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구태정치 세력에 표를 준다. 중도 집단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정치세력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새 정치세력이 진영정치와 보스정치로 점철된 구태정치의 틀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소망한다. 제3지대 정당이 이러한 소망을 이뤄주길 기대했으나 처참하게 배신당했다. 그렇지만 아직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비록 이번에는 대안 정치세력이 되기에 미숙하고 부족했지만 총선 후에도 정치는 계속된다.

제3지대 정당이 미래 정치를 선도할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으려면 새 정치의 목표가 양당제 타파여서는 안 된다. 진영정치와 보스정치의 틀 안에서는 어떤 정치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아무 내용 없이 껍데기만 있는 진보와 보수의 싸움 그리고 대통령 만들기 정치를 멈춰야 한다. 권력이 아니라 미래 비전과 시대정신을 놓고 다투는 정치를 만드는 것이 제3지대 정당의 목표여야 한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