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복잡해서 아름다운 세계

[혜윰노트] 복잡해서 아름다운 세계

정지연(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입력 2024-02-23 04:05

쉽고 간단한 것에만
빠져 있는 삶 아닌가
복잡한 세계도 맛보고 싶다

요즘 ‘진리의 발견’이라는 복잡한 책을 읽고 있다. 얼마 전 클래식 관련 책을 읽다가 슈만과 클라라와 브람스, 세 명의 관계를 설명하는 챕터 앞에 적혀 있던 인용구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의 절반 정도는 그것이 복잡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감정의 차원만큼 복잡하고 풍부해서 미묘한 차이들로 가득한 것은 없다. 우리는 어떤 관계에 이름표를 붙이려 하지만 관계가 그 이름을 거부하는 힘 또한 무엇보다 강력하다.- 마리아 포포바”

삶이 복잡해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은, 그동안 내 생각에서 결여된 것이었다. 나는 얼핏 복잡할 것 같은 일들에 지레 질색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슈만과 클라라 부부와 브람스를 생각하니 저 문장들이 멋지게 느껴졌다. 이런 문장을 쓴 사람은 누굴까. 마리아 포포바를 검색했다. 1984년생인 그녀는 2006년부터 개인 메일링 서비스를 운영하는 지적인 인플루언서로 6년 만에 구독자가 120만명이 됐다. 2019년에는 12년간 모으고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진리의 발견’이라는 책을 낸 것이다.

책도 복잡해서 아름다울 수 있구나, 감탄하며 읽고 있다.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500여년 동안 등장했던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가 800페이지 분량의 지면 위에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여 있다. 요하네스 케플러, 마리아 미첼, 허먼 멜빌,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마거릿 풀러, 찰스 다윈, 에밀리 디킨슨, 존 밀턴 등 시대를 앞서 나간 석학들은 세상이 정해준 틀 안에서 살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고 여러 고난이 따랐다. 그리고 서로를 알아보고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들의 일기와 편지, 논문과 책 등에서 마리아 포포바가 건져올린 과학과 시, 진리와 아름다움, 대화와 글쓰기, 예술과 삶에 대한 통찰은 나를 고무시켰다.

‘심플 이즈 더 베스트(Simple is the best)’의 시대를 사는 나는 단순함과 편리함에 길들여졌다. 버튼 하나로 많은 것이 해결되는 세상에 살면서 어떤 일이든 쪼개거나 축소해 간단하게 만드는 게 습관이 됐다. 그러다 이렇게 복잡하고 아름다운 세계의 사람들을 엿보니 내가 관찰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복잡함의 원리를 알기 때문에 그걸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간단한 것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돼가는 건 아닐까. 우아함이 없는 단순함은 초라할 뿐이다.

언젠가 드라마 우영우 얘길 하다가 “자폐가 뭘 말하는 거야? 간단히 알려줘봐” 했더니 친구는 똑같은 증상을 가진 자폐인은 없다고, 그래서 간단히 말하기 어렵다고, 자폐증이 아니라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했다.

나는 일란성 쌍둥이일지라도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쉽고 간단한 형태가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 뒤의 복잡하고 아름다운 세계, 깊이와 넓이에 한계가 없는 무수한 가능성의 세계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었다.

앞으로 조금씩 복잡한 세계로 걸음을 옮겨보고 싶다. 상대가 무슨 말을 길게 할 때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며 재촉하는 일을 줄여야겠다. 가끔은 10분이면 조리되는 간편식을 벗어나 정성들여 요리를 해봐야겠다. 30초짜리 짧은 영상의 시대지만 800페이지짜리 책을 읽는 수고를 기꺼이 해야겠다. 처음엔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복잡한 것들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자연의 아름다움도 단순함 때문이 아니다. 천문학자였던 마리아 미첼은 유심히 올려다본 밤하늘이 매우 복잡하고 아름다웠다고, 그래서 오랜 시간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심플함을 선호하겠지만 복잡한 세계의 존재와 아름다움을 언제나 잊지 않고 싶다.

정지연(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