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이해하기 힘든 의사 파업, 전화위복 되려면

[태원준 칼럼] 이해하기 힘든 의사 파업, 전화위복 되려면

입력 2024-02-23 04:20 수정 2024-02-23 04:20

전공의 공백 피해 줄이려
대형병원 경증환자 분산하는
정부의 비상진료체계

상급병원 중증환자 50%뿐인
큰병원 쏠림 ‘의료 이용 관행’
이참에 바꾸는 계기 될 수도

그런데,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말은 차마 못하겠다
환자들 사정 너무 절박해
전공의들 어서 돌아가기를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다. 그들의 대표가 페이스북에 여러 건 글을 올렸다. 응급의학을 택한 젊은 의사의 고뇌를 엿보며 읽다가 고개를 갸웃한 대목이 있었다. “정말 의사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정부와 의료계의 합의하에 의사 인력을 추계해야 합니다.” 이는 의사 집회의 피켓 문구이기도 했다. ‘의료계와 합의 없는 의대 증원 결사반대.’

합의? 의대 정원 정하는데 의사들과 합의를 해야 하나? 대학 정원 조정하면서 그 졸업생 허락을 받는 학과가 있나? 300명 사시 정원을 1000명까지 늘리고 로스쿨 도입해 2000명으로 확대할 때 정부가 변호사 단체와 합의를 했던가?

현장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순 없다. 법률 서비스 이용이 어렵다고 변호사들이 책임질 리 없듯이, 의료 서비스가 기능을 못할 때 결코 의사들이 책임지지 않는다. 그 책임은 오롯이 정부에 있다. 책임지지 않을 이들이 정부 정책에 ‘협의’도 아닌 ‘합의’를 요구하는 상황. 이번 의사 파업을 보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요구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적어도 그 내용이 이해되는 것이어야 하는데, 나는 그들의 주장을 납득하지 못했다. 먼저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논리. 의사 단체는 ①우리나라 활동 의사 수의 증가 속도가 빨라서 의대 정원을 안 늘려도 머잖아 OECD 평균을 따라잡고 ②급격한 인구 감소로 미래에 의사가 남아돌 거라고 주장한다. ①은 대한의사협회가 2013년 꺼낸 추계인데, 당시 “2023~2026년이면 따라잡는다”고 했었다. 2024년인 지금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고, 의협은 추월 시기를 40년이나 늦춰 2063년으로 수정했다.

②는 저출산 고령화의 인구 변화에서 한쪽만 얘기하고 있다. 통계청 추계를 보면 향후 30년간 우리나라 인구는 8% 줄어드는 반면 노인 인구는 234% 늘어난다. 아픈 사람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뜻이니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쉽게 유추할 수 있는데, 어떤 의사 단체도 이 부분을 말하지 않는다. 의대 학장들은 성명에서 “의사 교육 기간과 급격한 인구 감소를 고려하면 인력 수급 정책은 30년 뒤를 내다보고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30년 뒤를 보라면서 30년간 폭증할 노인 인구는 쏙 빼놨다.

다음, 의사가 늘어나면 의료비가 증가한다는 논리. 늘어난 의사들의 과잉진료에 의료비가 상승한다는 1970년대 유인수요론에 근거하고 있다. 유리한 가설이니 차용했을 테지만, 너무 오래전 것을 가져왔다. 이후 숱한 후속 연구가 이뤄졌다. 의사들의 경쟁에 의료비가 낮아진다는 정반대 학설부터, 국내에선 의원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주로 유인수요가 나타나 오히려 긍정적이라거나, 의료비는 국민소득과 노인 인구에 크게 좌우돼 의사 수와 별로 관계가 없다는 논문이 즐비하게 쌓여 있다.

이렇게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 의료비가 늘어난다는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지다 보니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나머지 두 가지 명분은 자연히 힘을 잃는다. “의사 늘린다고 필수의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 필수의료 살릴 방법을 요구해야지, 부족한 의사를 늘리지 말라고 파업할 일인가. “의대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 그럼 교육 인프라에 더 투자하라고 이참에 주문해야지, 증원 자체를 막을 일인가. 의사들은 정부가 필수의료에 쏟겠다는 10조원을 “이렇게 쓰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대화에 나서야 할 때, 거꾸로 병원을 비웠다.

한동안 전공의 없는 병원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기왕 벌어진 사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병원 이용 관행’이 바뀐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상급종합병원의 중증 환자 비중은 50% 정도였다. 나머지 절반은 더 작은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데, 큰 병원을 찾는 오랜 인식이 심각한 쏠림 현상과 의료 지연을 초래해왔다. 정부가 지금 이 절반을 원래 갔어야 할 병원으로 보내는 회송 작업을 하고 있다. 국민에게 질환의 경중에 맞는 병원을 찾아 달라 호소하는 중이다. 전공의 공백 피해를 줄이려는 이 조치는 왜곡됐던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가 많은 뉴노멀을 낳았듯, 파업 사태로 병원 이용의 뉴노멀이 정착한다면 한국 의료의 숙원이 풀릴 수 있다. 국민적 호응이 필요하다.

그런데 ‘위기를 기회로’라는 말은 차마 쓰지 못하겠다. 환자들의 사정이 너무 절박하다. 전공의들이 어서 환자 곁으로 돌아가기를 빈다.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지 않나.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