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사랑이 아닌 줄 알았는데

[빛과 소금] 사랑이 아닌 줄 알았는데

박재찬 종교부장

입력 2024-02-24 04:08

대한노인회가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60세 이상이 대상인데, ‘노년층의 지혜와 유머, 삶의 경험을 전 세대와 폭넓게 공유해보자’는 게 공모전의 취지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내년이면 1000만명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여러 기관에서 추정한다.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코앞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인 시 공모전은 자연스러운 이벤트로 다가온다. 이 행사는 사실 일본의 ‘센류 공모전’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인 ‘센류’는 총 17개 음으로 구성된 짤막한 시다. 일본에서는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가 2001년부터 매년 ‘실버 센류’라는 시 공모전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공모전에 출품된 응모작 가운데 당선작을 추려 책을 냈는데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 제목은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얼마 전 서점에 들러 이 책을 펼쳤다가 그 자리에서 다 읽고 말았다. 노인 특유의 풍류와 익살 해학이 시마다 촘촘히 묻어났다. ‘개찰구 안 열려 확인하니 진찰권’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가 들은 병명, 노환입니다’ ‘동창회 식후에는 약 설명회’ ‘젊어 보이시네요, 그 한마디에 모자 벗을 기회 놓쳤다’…. 이런 류다.

책 제목으로 쓰인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은 일흔다섯의 어르신 작품인데,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가 사랑의 감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부정맥 때문이었다는 ‘웃픈’ 이야기다.

눈으로 읽는데 채 3초도 안 걸리는 짧은 시에 웃음을 짓다가도 마음이 숙연해지는 건 그 얘기가 비단 일본의 얘기뿐만 아니라 지금 한국의 얘기요, 부모님들의 얘기이자 십수년 뒤 나의 사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설 명절에 양가 어르신을 뵈면서 노쇠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가시지 않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손자들을 번쩍 들어 목말을 태우던 기력은 온데간데없고, 복용하는 알약 개수가 더 늘어난 걸 보고 말았다. 최근 들어서는 점점 잦아지는 또래 지인 부모들의 부음 소식도 남 얘기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또 다른 노년의 일상도 목도하고 있다. 의료환경이 나아지고 기대수명이 늘면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노인들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본다.

그런데도 꽤 많은 노인은 여전히 할 일이 없다. 일을 찾고 싶어하지만 여의치 않다는 게 수치로도 드러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구직 경험이 있는 65∼79세 비율은 18.6%였다. 5명 중 4명 정도는 일자리를 구할 생각 없이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친구는 주로 TV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이달 초 발표한 콘텐츠 산업 동향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TV 시청 시간은 주당 평균 20.48시간이었다. 매일 반나절 가까이 TV 앞에 앉아있는 셈인데 월평균 3만1310원을 지출하고 있다.

기독교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기독교사회문화연구원이 지난해 11월 연령별 미디어 이용도를 조사한 결과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이용한 매체가 TV라고 답한 60대 응답이 78.3%로 다른 연령대와 비교할 때 가장 높았다. 요즘엔 유튜브를 이용하는 노인도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TV 앞에 앉아서 또는 스마트폰을 끼고 살면서 ‘나 홀로’ 말년이 익숙해지는 세상처럼 보인다. 바꿔 말하면 우리 사회의 노년 공동체 문화의 토대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교회, 특히 지역교회 공동체가 존재감을 더 드러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안정된 소속감을 바탕으로 내 얘기를 건넬 수 있고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상존하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큰 교회나 작은교회, 도시교회나 시골교회, 개척교회든 마찬가지다. 그런 교회 공동체에서 신의 은총을 경험한 어르신에게선 이런 시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 아닌 줄 알았는데, 대박!’

박재찬 종교부장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