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KGB의 정적 암살 기법

[한마당] KGB의 정적 암살 기법

고세욱 논설위원

입력 2024-02-23 04:10

스파이 영화의 단골 소재인 국가 정보기관의 정적 암살은 해당국에서 인정하지 않을 뿐 현실에선 은밀히 진행 중이다. 암살에 가장 많이 사용된 수법은 총기 저격이다.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 요원들은 소리 소문없이 중동 테러리스트를 저격하고 사라지기 일쑤다. 요즘에는 모사드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드론이나 닌자 폭탄을 암살에 애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장기는 독극물을 통한 암살이다. 1930년대부터 전담연구소를 꾸려 각종 독극물을 끊임없이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는 1959년 우크라이나 지도자 스테판 반데라를 청산가리 스프레이로 살해했다. 2017년 북한이 김정남을 암살하는데 차용한 방식으로 알려졌다. 1971년 유명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에게도 독극물 ‘리신’을 통한 살해 시도가 있었다. 당시 KGB의장이자 훗날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된 유리 안드로포프가 주도했다.

KGB 전통(?)은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계승됐다. 영국으로 망명한 FSB 전직 간부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2006년 방사능 물질 폴로늄 210이 든 홍차를 마신 뒤 숨졌다. 2018년에는 러시아 정보기관 출신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딸이 화학무기 ‘노비촉’에 음독된 뒤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지난 16일 사망한 러시아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는 KGB가 개발한 ‘원 펀치’라는 색다른 암살 기법에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더타임스는 러시아 측이 시베리아 감옥에 수감된 나발니를 오랜 시간 추위에 노출시켜 혈액 순환을 막은 뒤 한 번의 타격으로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인권단체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몸에서 발견된 멍이 근거였다. KGB는 주먹 한 방으로 심장을 쳐 죽일 수 있도록 요원들을 훈련했고 FSB가 이를 전수했다는 것이다. 4년 전 노비촉 중독에 죽을 뻔한 나발니에게 두 번째 행운은 오지 않았다. 심기를 거스르면 누구든 없애는 KGB 요원 출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잔인성에 새삼 놀라게 된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