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여성가족부의 이런 엔딩

[돋을새김] 여성가족부의 이런 엔딩

김나래 사회부장

입력 2024-02-27 04:05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의 면직안을 재가했다. 김 장관이 지난해 9월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지 5개월 만이다. 그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앞으로 김 장관의 후임을 임명하지 않고, 여가부를 차관 체제로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조직법상 엄연히 존재하는 부처의 장관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한 번, 그런 뜻을 거침없이 밝히는 모습에 두 번 놀랐다.

현 정부는 ‘법치’를 국정 운영의 주요 가치로 삼는다. 노동개혁을 위해 노사 ‘법치주의’를 외치고, 현재 전공의 사직 사태에 대해서도 엄정한 법적 대응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그런 윤석열정부가 입법 사항인 정부조직 개편을 ‘법을 무력화하는 식’으로 밀어붙일 줄은 몰랐다.

많은 이들이 윤 대통령의 대선 주요 공약으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기억한다. 누군가는 이런 식으로 여가부를 없애버리는 게 공약이라고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공약집 제일 뒷부분, ‘정부 혁신’ 부문에 담긴 내용을 보면 윤 후보는 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고 약속했다. “여가부가 중요 사건에서 논란만 증폭시키는 등 양성평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며 “가족을 보호하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별도 부처 신설”을 다짐했다.

실제로 정부는 출범 후 2022년 10월 여가부 폐지 대신 보건복지부에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만들어 관련 업무를 보내고, 여성 고용은 고용노동부로 이관하는 방안 등의 구상을 내놨다. ‘여성’이란 말이 들어간 부서는 없애버리고, 그 기능을 다른 부처로 나눠주는 것이 공약의 핵심이었던 셈이다.

어느덧 다시 선거철. 4·10 총선을 앞두고 생산적인 정책 경쟁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나마 여야 공히 인구부 신설을 내세운 게 눈에 띈다. 현 정부조직으로는 저출산·고령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여야 정치권에 형성됐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도 아마 정치권과 비슷한 맥락에서 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내용까지 다 포함해 여야가 함께 정부조직법 개정을 논의해달라고 요구하면 된다. 국회는 물론 정부 부처와 시민사회, 무엇보다 정책의 당사자인 여성들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금 이 시대에 걸맞은 양성평등과 가족 보호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할 조직을 만들어가면 된다. 여가부가 담당하던 청소년, 가족 업무는 어디에서 담당할지, 양성평등 분야 업무의 핵심인 ‘성별 영향평가’는 어떻게 해나갈지, 여성고용을 고용노동부로 보낸다면 어떤 식으로 기존 업무와 합칠지 하나하나 따져서 논의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적 논의를 통해 법률로 정해야 할 일을 차관 체제의 여가부에서 슬그머니 해볼 심사인 것 같다. 여가부는 26일 복지부 출신 인사를 발령냈다. 여가부 폐지를 내세워 갈라치기를 하고, 젊은 남성들의 ‘여성 혐오’에 기대 선거에 이겼던 기억을 떠올리는 게 아니길 바란다. ‘여가부 폐지’ 공약 완수를 내세워 총선에서 재미를 보고, 총선 후 여당의 입맛대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면 그야말로 큰 오산이다. 어떤 대상을 악마화해 놓고 혐오를 먹이 삼아 공약을 완수한다면, 그 자체로 부끄러운 일일 뿐이다.

지난해 여가부를 ‘드라마틱하게 엑시트(exit)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김행 전 여가부 장관 후보자는 검증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낙마했다. 그 후 5개월간 식물 장관 체제를 내버려 두는 걸 보면서 여가부의 끝을 보겠구나 했지만 ‘막장 드라마’ 같은 엔딩일 줄은 몰랐다. 이런 엔딩은 아무리 생각해도 있어선 안 될 엔딩이다.

김나래 사회부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