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미인대회

[한마당] 미인대회

고승욱 논설위원

입력 2024-02-28 04:10

미인대회의 역사는 길다. 꽃의 여신 플로라가 주인공이었던 로마시대 꽃의 축제 플로랄리아에서 시작한다. 고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5월 1일 전날 밤 달빛 아래서 모닥불을 피우며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벨테인(불의 축제)이 열렸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축제는 며칠 동안 계속됐고,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뽑아 축하 행렬 맨 앞에 세웠다. 이 여인이 바로 5월의 여왕 메이퀸이다. 중세 이후 유럽 각국에서는 비슷한 축제를 즐겼는데, 공동체를 위해 봉사할 젊고 아름다운 여성 선발이 빠지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후 이 전통은 미인대회로 이어졌다. 주로 스포츠 행사나 관광지의 일회성 이벤트였지만 최고의 미인을 보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그런데 유럽에서 간헐적으로 열렸던 미인대회는 미국으로 건너가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1880년 워싱턴 고위 인사들의 여름 휴양지였던 델라웨어 르호보스 비치에서는 처음으로 미스 아메리카가 등장했다. 이곳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여성이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이다. 이때쯤이면 건강한 여성상을 찾는다는 축제의 전통은 찾을 수 없게 됐다. 눈요기가 되는 늘씬한 여성들을 앞세운 전국 규모의 미인대회가 곳곳에서 열렸고 미스 유니버스, 미스 인터내셔널, 미스 월드, 미스 어스 등 국제대회가 경쟁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미인대회는 선망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미스 월드 대회에서 우승자가 수영복만 입고 왕관을 쓰자 교황이 ‘죄악의 대관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며 성적 대상으로 삼는다는 비난에 미인대회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제 미스 독일에 39세의 이란 출신 인권운동가 아파메흐 쇠나우어가 뽑혔다. 그는 건축가로 일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다. 미인의 기준이 금발의 키 큰 백인에서 벗어나더니 드디어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자본의 논리에 갇힌 미인대회가 사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고승욱 논설위원